물질 소유보다 ‘인간 존재로 인생을 건다’

(사진_윤재호 기자)

(시사매거진 239호=안수지 기자)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SBS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김정택(金正澤·67) 단장은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관현악 지휘자 겸 연주자로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81년 가수 현숙의 ‘정말로’를 작곡하며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등 유수의 대중가요를 작·편곡한 그는 정통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서울대 기악과 출신이다. 피아노와 호른(horn)을 전공한 연주가에서 대중음악을 작·편곡하는 세션맨과 뮤지션을 거쳐 서울 유수 클럽과 방송계를 두루 섭렵한 그는 SBS ‘이주일의 투나잇쇼’와 ‘자니윤 이야기쇼’ 외에 2002년월드컵전야제, 부산아시안게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국가적 행사의 개·폐회 음악을 관장한 예술단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25년 넘게 자신의 ‘열정과 정성’을 모아 ‘초긍정과 초희망’을 전달하는 구제·구휼·봉사활동의 메신저가 돼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정택, 클래식 연주자에서 대중가요 뮤지션으로!

1958년경 서울대 음대 작곡가를 졸업한 큰형의 영향으로 8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던 김정택 단장은 배제중학교에서 밴드부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서울예고에서 트럼펫을, 서울대에서 피아노와 호른을 전공한 후 20대 청년기에는 동부이촌동에서 녹음실 전문 연주자인 세션맨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당시는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활동하도록 교육하는 대학교 실용음악과가 없어서 마장동, 방배동, 동부이촌동 등지에 산재한 녹음실에서 도제식으로 사사받으며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육군 병장으로 44개월 복무한 후 전역해 한 명의 완숙한 성인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한다는 목표 하에 자신의 능력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중 적은 시간을 투자해 고수입을 올리는 세션맨의 활동을 알게 되고, 이어 서울시에 산재한 유수 클럽과 방송 등에 필요한 음악을 연주하고 편곡은 물론 작곡하는 일에 몰두한다. 비록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정통음악 클래식을 연주하지 않고 대중음악 ‘딴따라’를 한다고 비난을 받았어도 그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위에서 순수음악인 클래식을 연주하지 않고, 딴따라 B급 음악인 대중가요를 연주한다고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음대 교수님도 연주회가 끝나고 제자들과 뒤풀이를 할 때는 흥에 겨워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우지마라’, ‘목포의 눈물’ 등을 열창했다. 사람의 생활상과 밀접한 가요를 통해 개개인의 감정과 감흥을 표현하는 토로하는 음악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음악 정교사 자격증도 있었지만, 대중가요를 한 단계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세션맨, 뮤지션의 길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나는 새로운 일, 신나는 일 그리고 신비로운 일거리를 찾아내 추진하는 것이 좋았다.”
그는 한 단계 더 진일보해 대학 선배였던 김훈(현직 목사)이 조직한 그룹사운드 ‘트리펄스(나그네들, travelers)’ 활동에 참여해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했다. 그리고 소공동 라스베이거스와 나이온스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자신의 기량을 신장시켜 나갔다. 연주와 외모, 재능 등을 두루 갖춘 인재들로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음대 출신이 실용음악을 추구한다는 이슈로 인해 세인들의 많은 관심과 높은 인기가 뒤따랐다.

하루에 두 번 연주 무대에 서는 그는 ‘열정과 정성’으로 준비하는 덕분에 ‘음악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도 김정택 단장은 1991년경 SBS 관현악단 최연소 지휘자로 채용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_윤재호 기자)

히트곡 제조하는 대중가요 작곡가, 김정택

1981년 녹음실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편곡하던 김정택 단장에게 가수들의 방문이 이뤄진다. 그동안 친분을 쌓고 지내던 16세의 효녀가수 현숙이 직접 찾아와 자신의 나이에 맞는 노래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한다. 당시 소녀의 나이로 ‘낯선 곳 타국에서 얼마나 땀 흘리세요,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부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염려 마세요’란 가사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를 부르던 현숙이 눈물로 호소했다.
김정택 단장은 현숙을 위해 당시 유행하던 솔과 펑키 음악을 고사하고, 자신의 추억 속에 내재한 스케이트장 데이트 감흥을 살려 복고풍의 트위스트 곡으로 상큼 발랄한 <정말로>를 작곡했다. 가수의 나이에 맞게 음역대를 선정하고 누구나 가볍고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고안했다. 그로써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 하며 대히트를 공전한 <정말로>는 가수 현숙을 인기 정상에 올려놓았다. 김정택 단장의 말대로 “한 여성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5세 때부터 무대에 섰던 화동가수 정수라가 작곡을 의뢰해 왔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던 그녀를 위해 김정택 단장은 <어부의 딸(1987)>을 작곡했다. 이어 신인작곡가의 노래를 편곡한 <아아 대한민국(1994)>도 나왔다. 그 외 <그런 사람 필요치 않아> 등의 노래를 작곡해 가수 정수라의 입지를 굳히는 초석이 돼주었다.
1985년에는 가수 전영록의 노래를 작곡했다. 지일레코드사에서 아세아레코드사로 이적한 그가 인기와 판매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김정택 단장은 “나의 뜨거운 마음을 불같은 나의 마음을 다시 태울 수 없을까 헤어지기는 정말 싫어 이제라도 살며시 나를 두고 간다면 내 마음 너무나 아쉬워”란 전영록의 감정과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도록 <불티>에 열정을 실었다. 그 외 <하얀 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등이 대중의 지대한 사랑을 받았다.
가수 인순이의 경우 그녀의 매니저인 한백희 사장과의 인연을 생각해 인순이 특유의 매력과 색깔을 잘 살릴 수 있는 노래를 작곡했다. 이 노래가 바로 <밤이면 밤마다(1983)>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일개 가수 인순이를 국민가수로 등극시켰다. 이로써 김정택 단장은 과거 뮤지션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큰 도움을 주었던 한백희 사장에게 보답을 한다.
이어 김정택 단장은 SBS ‘이주일의 투나잇쇼’와 ‘자니윤 이야기쇼’를 진행하며 관현악단장과 지휘자, 연주자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연예인도 아닌 그가, 쇼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담당하며 이야기와 음악을 교대로 배치하는 방식을 선택해 새로운 흥미의 주역으로 세인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다.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국가적 행사의 개·폐회 음악을 관장한 예술단장이기도 한 김정택 단장은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25년 넘게 자신의 ‘열정과 정성’을 모아 ‘초긍정과 초희망’을 전달하는 구제·구휼·봉사활동의 메신저가 돼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_윤재호 기자)

김정택, 클래식과 대중가요 접목한 크로스오버

이후 김정택 단장은 기악에서 작곡으로, 순수에서 대중음악으로 전향하며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접목한 크로스오버의 길을 개척한다. 1982년에 MBC 문화방송에 관현악단 수석연주자 리듬파트 연주자로 채용되어 드럼, 키보드, 기타 등을 총괄한다. 이와 더불어 오랜 시간동안 홀리데이인서울 극장식 가족 레스토랑에 전격적으로 채용된다. 낮에는 방송 일, 밤에는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8년 동안 활동하며 내외적 인지도를 확보한다.
하루에 두 번 연주 무대에 서는 그는 ‘열정과 정성’으로 준비하는 덕분에 ‘음악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난다. 덕분에 1991년경 SBS 관현악단 최연소 지휘자로 채용된다. 이어 1998년에는 타 방송사로 이적하지 못하도록 전속예술단 계약을 채결한다.
그는 “처음에는 SBS 전속관현악단으로 채용되었다. 그러다가 1994~5년경에 관현악단, 합창단, 무용단을 총괄하는 예술단장직을 도맡게 된다. 그 이전부터 SBS 신우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한 경력을 높이 산 덕분에 비정규 계약직에서 연봉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건국 이래 전속단체장으로서 그런 관례가 없었다고 한다”고 들려준다.
1991 SBS 관현악단 지휘자 이후 1998년 서울방송 예능국 전속예술단 단장, 같은 해 8월 서울방송 예능국 관현악단 단장 겸임과 더불어 2000년까지 SBS프로덕션 전속예술단장 겸 관현악단장을 맡게 된다. 이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SBS프로덕션 예술단 단장과 2009년부터 현재까지 SBS 예술단 단장을 역임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김대중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한다. 그의 공로는 2002년월드컵전야제, 부산아시안게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국가적 행사의 개·폐회 음악을 관장한 데 따른다.

‘돈 벌어서 남 주자’라고 말하는 김정택 단장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사는 데 보람을 느낀다”라며 “예술단원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사진_윤재호 기자)

김정택의 봉사하는 삶, “무조건 감사하자”

김정택 단장은 특이하게도 ‘돈 벌어서 남 주자’는 복지비전 철학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92년 ‘주님의 교회’와 더불어 <사단법인 나누리선교비전센터>를 운영하는 전몽월 목사 겸 이사장의 권유로 지금까지 25년 넘게 <사랑의 콘서트>를 진행하며 재능가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1월까지 25년 넘게 활동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와 연주, 기획과 제작, 추진과 활동을 병행하며 외롭고 힘들어 많이 울었다. 하지만 공연을 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되니 보람차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 울고, 나중에는 감사하고 고마워서 울었다. 일천한 저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벌어 가난하고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 도와주는 계기가 되니 인생에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계속해 재능기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심정을 밝힌다.
그는 <사랑의 콘서트>에 클래식, 팝퓰라, CCM 등 모든 장르를 도입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크로스오버의 향연이다. 유명인사도 1회에 4명 정도 참여하는 데 25년을 추산하면 대략 100여명의 명사들이 참여해 도움을 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소년소녀 가장과 청소년은 물론 노숙자, 미혼모, 지역교육센터, 푸드뱅크, 해외빈곤아동, 사랑의 집, 우물파기, 의정부 독거노인 돕기 등에 자원을 투척하고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외에 지난 2011년부터는 군부대 위문공연도 열정적으로 준비한다. 과거 SBS 신우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군부대 정훈교육, 예비군 관련 교육 사단에 공연을 하면서부터 남다른 국가관도 배양하게 되었다. 그는 국가의 필요성과 국민의 역할에 대해 각인하며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는 지론 하에 군부대 연주 때에는 피아노를 비롯한 모든 악기 공수와 메이크업 완비, 연주복 착용도 직접 한다. 모두 완벽하게 준비해 정성을 들인다. “무조건 감사하자”는 그의 마인드 때문이다.
“저의 예술단장으로서의 운영철학은 ‘돈 벌어서 남 주자’이다. 예술단원들을 행복하게 해주자, 노후대책 해주자는 취지다. 사람은 욕심에서 죄를 짓는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으로 인생을 걸지 않고 유익한 인간 존재로 인생을 건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사는 데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한다. 다행이 어릴 적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초긍정적이고 초낙관적이다. 그래서 <사랑의 콘서트>를 하면 3000명 이상이 찾아온다. 고맙고 감사하다.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과 마음을 모아 초희망으로 봉사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자산이며 행복이다.”

(사진_김정택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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