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체성 위기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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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체성 위기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
  • 강현섭
  • 승인 2018.10.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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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적 기로에 선 한반도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ICBM 급 장거리 미사일의 고각발사가 성공하자 이젠 대한민국의 안보가 위협 받게 되었다.

동북아 세력균형의 틀이 변화되어 한반도의 명운을 가르는 새로운 판이 형성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3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美 트럼프 행정부와의 북한 핵 폐기 중재를 자임하고 나선 데에는 이 땅 한반도에서 전쟁 없는 평화를 이루려는 속뜻이 있지만 행여, 국가지도자의 잘못된 선택과 오판으로 미래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잘못 선택한다면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국민들에겐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정체성의 재정립과 국민적 공감대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 되었다.

역사는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국제 역학관계의 판이 변화할 때, 선택을 강요하며 오판 시 전쟁의 위험이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과제를 웅변으로 남기고 있다.

◇ 전쟁과 지역패권은 무기로 승패 갈려

명멸해왔던 국가나 정권들의 소소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운명의 틀은 국제 역학적인 관계에서 볼 때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늘 지역의 세력판도가 바뀔 때마다 국가 간 패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명암이 교차해 온 것이다.

특히 전쟁의 승패는 무기와 전쟁방식의 우열에 의해 갈리게 되었으며 전쟁 중 가장 큰 피해자는 한반도에 사는 백성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나 국민들의 일치된 공감이 필요한 때다. 더구나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남·북간, 북·미간, 한·중과 한·일간 벌어지고 있는 외교 상황은 엄중하여 우리가 현실 판단을 잘해야 함과 아울러 미래의 외교와 안보의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선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 이후 겪었던 갈등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의 정체성마저 혼돈스런 상태로 진행되는 양상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 간 대립하며 통일을 둘러싼 이견, 전시작전권의 환수나 한미동맹의 존속여부에 대한 대립 및 북핵 해법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의견대립이 점증하는 상황이 자칫 잘못하다간 과거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우리 민족이 인접국가로부터 당했던 참혹한 희생의 역사를 새삼 떠올리게 하고 있다.

◇ 패배한 전쟁의 역사와 백성의 참혹성

우리민족은 국가의 지도자가 오판할 때마다 큰 변란을 겪어왔다.

고려 말 몽고는 1219-1225년 사이 무려 15차례나 고려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례를 무시한 공물 헌납을 요구 하였는데 그 목록은 수달피 10만장, 비단 3,000필, 모시 2,000필, 종이 10만장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1221년 사신으로 온 저고여의 피살을 계기로 몽고침략군은 한반도에 득달같이 쳐내려와 엄청난 피해를 우리 민족에게 강요했으며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를 파괴한 이후 약 20만이 넘는 고려인을 사로잡아 붙잡아 갔다.

1592년 임진왜란은 역시 한반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썩은 지도자들이 도망갈 때 백성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

히 받아내야 했던 것이다. 조선에 7년간 머물던 왜군들은 병사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귀와 코를 베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하였는데 교토에 바로 귀 무덤, 코 무덤이 생길 정도였으며 왜병은 머리를 소금에 절여서 상자에 넣어 배에 실어 운반하였는데, 일본 측 기록은 약 20만 명의 머리를 일본에 묻었다고 하며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은 수를 헤아릴 수없이 처참한 노예로 끌려갔다.

1623년의 인조반정으로 인조정권이 '망해가던 명'을 선택하자 1627년 만주의 누르하치는 조선을 침략했다. 정묘호란이다.

조선이 '황제의 나라' 명도 잘 섬기고 '형의 나라' 만주와도 잘 지내려고 애썼지만 명과 만주가 계속 싸우는 현실

속에서 '끼여 있는' 약소국은 결국 선택의 기로로 내 몰렸지만 '왕권 보위'에만 골몰하며 안팎의 형세를 볼 줄 몰랐던 인조 정권의 무능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군신의 예로서 청을 받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연도에 나와 울음과 절규 속에 50만이 넘는 남녀 포로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끌려가는 젊은 백성과 아녀자들의 절규 속에 호송하는 청군들은 도망자의 다리를 절단하였고 산야를 지나는 지방수령들은 넙죽 엎드려 소 20두와 백미 20 광주리를 지역마다 상납하는 예를 베풀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조선이 청에 바쳐야 하는 조공 품목을 살펴보면, 매년 황금 100냥, 백은 1,000냥, 물 소뿔 200대, 표범 가죽 100장, 사슴 가죽 100장, 차 100포, 수달 가죽 400장, 청서 가죽 300장, 후추 10두, 요도(허리에 차는 칼) 26구, 순도(양날 칼) 20구, 소목(콩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200근, 큰 종이 1,000권, 작은 종이 1,500권, 오조룡석 4령, 여러 가지 모양의 화석 40령, 눈모시 200필, 여러 가지 색의 명주 2,0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마포(가는 삼실로 짠 매우 고운 베) 4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포(곱고 가늘게 짜인 삼베) 1000필, 포 1,400필, 쌀 10,000포로서 백성들은 지독한 가난과 조공에 허리가 휘었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언급해서 무엇 하랴? 400만 명이 징용으로 끌려가고 20만 명의 처녀들이 성노예로 끌려가 원치 않는 국가의 무능에 대한 삯을 혹독하게 치루었다.

지금의 형국도 구한말의 형세와 비슷하여 세력판도가 바뀌어가는 형세 진단이지만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제시한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의 방책 중 원교 근공책으로서 미국과의 관계는 실로 민족의 생존과 관련된 안보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6.25남침과 한미동맹의 불가피성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치른 전쟁 중에서 가장 처참하고 피해가 커서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으며 특히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으로 남한의 사망자 수만 해도 한국군(경찰 포함) 62만여 명과 국제 연합군 16만여 명 등 78만여 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도 남한에서만 100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철저히 파괴된 한반도와 처참한 국민들을 위해 오죽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스스로 요구하고 우리의 안보를 미국에 맡겨 전시작전권 마저 흔쾌히 이양하였겠는가?

◇ 올바른 선택으로 국가정체성 확립, 지도자와 국민 한마음 되어야

안보(安保)는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며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단과 외교력도 필요하다.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던 한반도가 100여년이 지난 지금과 상황이 달라졌는가? 이 시각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최대의 적은 어느 나라인가? 행여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인 남북을 링 위에 올려 피터지게 싸우도록 조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서서 동맹으로 버텨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족의 아픔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또한 로마제국이나 중국처럼 우리가 패권국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국력이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힘센 국가에 의지해 최상의 안보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처절했던 시절을 교훈삼아 이웃과 선린 우호의 외교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속국으로서 막대한 조공을 바쳐가며 사대의 예를 행해야 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래도 영토적 야심이 없으며 민주적인 정체성을 지닌 미국과의 동맹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난국을 잘 풀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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