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독 심연주와 극단 벼랑끝날다

작곡가 심연주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시사매거진=강창호 기자] 화수분,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재물을 가리켜 중국 진시황 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비롯된 말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극단 ‘벼랑끝날다’와 함께 10년 동안 한 우물만 깊게 판 아티스트가 있다. 어릴 적부터 연극 무대를 통해 연극배우의 삶을 살았지만, 어느 날 돌연 음악의 삶에 뛰어들어 작곡가가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노래들은 무대 위에서 자유를 얻었다.

극단 ‘벼랑끝날다’에서 심연주 음악감독은 절대적이다. 그의 음악이 곧 극단이고 삶이기에... 10년을 달려오는 동안 극단과 본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작곡가 심연주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처음 음악극을 하게 된 과정은?

"언제든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남편 이용주 연출의 말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웃음) 이렇게 한 단체에서 오래 일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저 힘들면 한 3년 하다가 쉬어야겠다"라고 이렇게 편하게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간 거예요.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저 같은 경우 꽤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몇 년간 치다가 그만두었어요.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죠. 그래서 저와 부모님 머릿속에 ‘음악인’ 혹은 ‘예술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단지 친할머니가 동네잔치가 열리면 장고를 치셨다는(?) 그 정도죠. 고등학교 진학도 인문계가 싫어 예고를 갔어요. 그 당시 지금의 제 남편이 안양예고의 강사 선생님이었죠. 학생과 선생님으로 만나 결국 결혼도 하고 이렇게 작업도 같이 하네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작곡가 심연주와 극음악 전문 앙상블 '드라뮤지션(Dramusician)'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대학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연기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졸업 공연이 끝나는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어,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참으로 역설적이죠. 배우로서 무대 위에 서서 박수를 받는 순간에 전 음악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미국 유학은 남편이 먼저 가고, 저는 그 이듬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Homboldt State University’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죠. 제 안에는 언제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마치 영상 속에 흐르는 무수한 선율들이 제 마음속을 꿈틀꿈틀 헤집고 다녔죠. 어릴 적에는 MBC ‘주말의 명화’나 KBS ‘토요명화’ 시간을 늘 기다렸어요.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싶어서죠. 처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들이 존재하다니...”

결국 제 자신도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를 위해 곡을 쓰고 연주를 하고 있더군요. 인상 깊은 장면이나 스토리는 제 상상력의 원천이죠. 그리고 그 장면과 스토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저의 음악이 되었으면 해요.

작곡가 심연주 (c)Alex Kang

극단 ‘벼랑끝날다’ 10년 속에 음악감독 심연주는 어떤 의미?

무대가 곧 저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극단과 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10년 동안 제가 만든 음악과 극단은 유기적인 결합체니까요. 다른 극단과 달리 저희는 10년 동안 한 우물 즉, 음악극만 해왔어요. 전문화된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지요. 극단의 각본, 연출은 이용주 감독님이 전담하시고 전 오로지 음악을 극에 녹여내는 데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죠. 보통은 부부가 이렇게 호흡을 맞춰가며 오랫동안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다고들 해요. 서로 간의 밸런스 문제, 여러 의견 충돌이 있지요. 대부분의 음악은 극속에 아주 작은 일부분이거나 아예 존재감이 없기도 하죠. 그러나 저희 같은 경우는 서로의 방향과 예술관이 같고 작업이 완전히 분리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아마도 그 부분이 서로 달랐다면 이렇게 10년까지 오기가 쉽지는 않았겠죠?

음악극 카르멘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10년 동안 음악극을 해 오면서 가장 애정가는 작품과 장면은?

10년 동안의 ​모든 작품을 소중히 여기지만 동시에 모든 작품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도 가장 많은 추억과 사연이 묻어있는 작품은 ​500회 이상 넘게 공연한 극단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음악극 <카르멘>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모든 대사와 인물들의 캐릭터가 내 가슴속에서 일렁일 정도죠. 이 작품은 그동안 무대에 오를 적마다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오히려 음악 파트는 거의 건드리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다른 작품들에 더 매달리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카르멘이 호세에게 찔려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에요. ​죽음의 순간이 그렇게 느린 호흡으로 그려진 작품은 드물 것이라 생각되는데, ​자유를 선택한 카르멘의 죽음이 헛되게 느껴지지 않아요. ​마지막에 죽음의 사도들과 함께 걸어 나가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답죠. ​그래서 그 장면이 가장 가슴에 남아요.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와 욕망을 가진 두 인간의 파국이 결코 비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슬픔과 고통이 승화되면 의미를 갖죠. 그것은 영적인 과정이고 저의 음악도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작품의 결과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요. 과정 자체가 히스토리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가장 큰 기쁨과 존재의 가치를 느끼죠. 마치 영화에서의 ‘디렉터스 컷’과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작곡가 심연주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음악적 영감은 어디에서 끌어오는지

저는 누구처럼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작곡을 하지는 않아요. 긴 호흡을 두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죠. 그래서 여러 주변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소스들을 수집해 나간답니다.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다양한 음악을 듣기도 하죠. 그리고 많은 영상물도 찾아서 보기도 해요. 특히 요즘엔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에 아무래도 제약이 있어 주로 실내 활동 위주로 하고 있죠. 그래서 요즘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주로 많이 찾아봐요.

​또한, 저는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걸 즐겨요. ​예전에는 소설광이었는데 요즘에는 에세이나 회고록 같은 책을 많이 들여다봐요.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 일기> 그리고 아직 국내에 번역서가 없지만 자기 고백적 글로 많은 울림을 주고 있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Glennon Doyle의 <Untamed>를 보고 있죠.

저는 인간이 겪는 딜레마나 고통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더더욱 관심이 가는 건, ​그러한 취약성을 성장의 밑거름 삼아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요즘 제가 읽는 책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들이에요.

작곡가 심연주와 극음악 전문 앙상블 '드라뮤지션(Dramusician)'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가?

음악극엔 많은 노래들이 들어가는데 특히 멜로디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죠.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 motiv)’처럼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선율은 음악극의 극적 판타지를 높여 준답니다. 그래서 ​누가 들어도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를 쓰려고 해요. 극이 끝나도 음악의 여운이 계속 남으려면 뭔가 중독적인 강한 인상의 선율이 필요하거든요. 우리가 아는 유명 뮤지컬들처럼 강렬한 아리아들이 떠오르잖아요? 그것들은 극을 떠나도 음악으로서의 존재감이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평소에도 ​풍부한 화성감이 돋보이는 후기 낭만시대의 곡들을 많이 연구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Groove가 강한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한 편곡에 있어서 힙합 그루브 혹은 리듬이 복잡한 16비트 Funk의 결합을 늘 상상하며 고민하고 있죠. ​

작곡가 심연주와 극음악 전문 앙상블 '드라뮤지션(Dramusician)'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또 다른 10년 후의 심연주와 작곡가로서 앞으로의 음악적 행로는?

​지금까지 해보니 ‘예술가로서 살아남는 것’ 정말로 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죠. 그래서 예술가로 태동하는 것은 선택일지는 몰라도 예술가로 죽는 것은 ‘운명’인 것 같아요. 제가 존경하는 작곡가들, 최근에 하늘나라의 별이 된 엔리오 모리꼬네나 스위드 토드의 스티븐 숀드하임 그리고 한스 짐머 같은 분들처럼 오랫동안 창작의 화수분에서 계속 샘물을 퍼낼 수 있다는 것과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지금 극단 ‘벼랑끝날다’와 10년이지만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라고 봐요. 좀 더 살아남아야겠죠.(웃음) 앞으로는 보다 좀 더 음악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극단의 모든 작품은 거의 다 라이브로 연주되는데, 이를 위해 7~8년 전에 소규모 챔버 앙상블을 만들었죠. 그게 바로 극음악 전문 앙상블 '드라뮤지션(Dramusician)'입니다. 지금까지는 극의 일부분으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독립적으로도 많은 연주활동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이제는 꽤 방대해진 오리지널 레퍼토리를 가지고 독특하고 유니크한 형식의 ‘극음악 콘서트’를 연출하고 싶어요. 그래서 10년 후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불씨를 다시 한번 확인해서 좋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극단 벼랑끝날다 10주년 기념작 '더클라운' (사진=극단 벼랑끝날다)

인터뷰를 마치고…

극단 벼랑끝날다는 2010년 7월에 창단, <책 읽어주는 죠바니의 카르멘>으로 초연 무대를 가진 후 10주년을 맞았다. 제23회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및 연출상, 의정부 음악극축제 어워드 대상 그리고 서울연극인대상에서 음악상, 신인연기상 등 수많은 상들을 휩쓸며 전국을 무대 삼아 숨가프게 달려온 지 10년, 그리고 음악극 <카르멘>, <십이야>, <그녀를 구하라>, <클라운 타운>, <알퐁스 도데의 별> 등 수많은 무대를 펼친 ‘극단 벼랑끝날다’는 극단으로서의 전문성과 독보적인 위치를 확고히 증명해 보였다.

극단 '벼랑끝날다'와의 10년 세월 속에서 동고동락한 심연주는 자신의 삶이 곧 '무대'라고 말한다. 무대에 올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선율과 화음으로 색동옷을 입히고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활기를 불어넣는, 어찌 보면 무대가 그의 은하계 또는 우주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새로운 꿈을 꾸며 하루하루 새로운 멜로디를 찾아 탐험하는 그에게 있어서 우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이다. ​

이름에 연주(演奏)가 있는, 작곡가 심연주! 그 이름대로 깊은(深, 깊을 심) 음악과 연주를 퍼 올리는 화수분이리라...

작곡가 심연주 (c)Alex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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