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광남

[시사매거진] 이순신의 반역 제 23장 이순신의 장계

선수 31, 30(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 11(임진)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부산 근처로 진병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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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 이순신이 치계하기를,

중국의 사신이 이미 통신(通信)하며 왕래하였는데도 흉적(兇賊)이 그대로 변경에 있으면서 아직도 틈을 노리어 침략할 계책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분개스럽습니다. 신이 수군을 뽑아 거느리고 부산 근처로 진주(進駐)하여 적이 오는 길을 차단하고 일사의 결전을 하여 하늘에 사무친 치욕을 씻고자 합니다. 만일 지휘(指揮)할 일이 있거든 급히 회유(回諭)를 내려주소서.”

하였는데, 듣는 자들이 모두 장하게 여겼다. (선조수정실록 중에서)

개임.

망궐례를 올렸다.

(이순신의 심중일기(心中日記) 1597년 정유년 319일 기유)

선전관 조영은 요즘 마음이 불안하고 꿈자리가 뒤숭숭 했다. 어제만 하더라도 도승지가 긴급하게 불러내어 입단속을 철저히 지시 하였고 급기야 오늘은 병조판서의 호출까지 받게 되었다. 병환중임을 핑계로 입궐을 미루었더니 이항복은 정중한 문구로 정오에 방문을 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물론 병문안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조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급하게 두루마기에 갓을 채비하고 집을 빠져나오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게 뉘신가? 선전관 아니시오?”

하필이면 이러한 때 유성룡과 마주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조영이었다. 영상은 매우 재미난 일을 꾸미는 악동처럼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잘 만났소. 내가 지금 청계천 수표교에서 중요한 분을 뵙기로 하였소이다. 내금위의 선전관에게는 반드시 알아 두시면 요긴한 분이시오.”

선전관 조영으로서는 절대 회피할 수 없는 신분의 영상대감 유성룡의 은근한 어조였다. 거절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어떤 분이신지요......?”

만나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나를 따르시오.”

조영은 병조판서 이항복이 아니라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실 상관없었다. 기왕이면 기분 좋게 만나리라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서 그는 봄비를 안내 삼아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유성룡의 뒤를 따라왔다. 청계천변에 이르자 유성룡은 감회가 새로웠다.

참으로 끔찍한 참상이었어.”

임금을 모시고 평양과 의주를 거쳐 몽진에서 돌아오니 한양은 지옥이었다. 궁궐은 불타버렸고 살아남은 생명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퇴하던 일본인들이 대량 학살을 자행하여 도성 안은 시체들로 즐비하였고 여기저기서 송장 썩는 악취가 진동하였다. 이곳 청계천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핏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고 방치된 시신들은 구더기가 들끓었다.

지옥이였지.”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봄꽃이 저마다 향기와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임진 다음 해 계사년 봄은 통곡화만 만발해 있었다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이 따로 없었어.”

선전관 조영도 눈살을 찌푸렸다. 수표교 아래 장작개비 마냥 나뒹굴던 앙상한 시신들을 그도 목격했었다. 왜적의 총과 칼에 토막 나고, 식량난으로 굶주려 피골이 상접하던 시신들을 태우는 연기가 장안을 진동했었다. 그 뼈와 살이 타는 냄새는 사흘 밤낮을 토해도 모자랄 정도로 역겨웠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대감!”

유성룡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적이 다시 재침략을 해온다면 그때의 지옥보다 더 처절한 지옥이 도래할 것이니 참으로 근심이 아닐 수 없네.”

우리에게는 그때와 달리 천병이 있지 않습니까? 10만에 달하는 명군이 참전하고 있으니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때 수표교에서 봄의 낭만을 즐기고 있던 어떤 사내가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

“10만이 아니라 100만이라 하더라도 태산같은 걱정이외다. 조선의 전쟁에 명군의 역할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소이다.”

사내는 수려한 용모에 담대함이 엿보이는 젊은이였다. 불청객의 등장에 조영은 내심 불쾌한 기분이 들었으나 동행하는 이가 어디 보통 신분인가? 영의정 앞이라 노기를 은근히 참으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끼어드는 것이냐?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조영은 제법 호통을 치며 품위 있게 나무랬다. 사내는 별로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없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예의를 차릴만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예의를 차린답니다.”

무엇이라고?”

선전관 조영이 날카롭게 반문하려는 순간에 사내의 오른 손이 부챗살 마냥 펼쳐지며 뻗어왔다.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완만한 속도라고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며 피하려고 얼굴을 돌릴 때 사내의 왼 손이 어느 틈에 갈고리 마냥 조영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

비명도 크게 토하지 못했다. 미증유의 힘에 의해서 조영은 사내의 손 놀림에 따라 크게 휘청거렸다. 이어서 목 뒤가 뜨끔 거리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눈을 떠라!”

선전관 조영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앞이 캄캄하였다. 두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어딘가에 단단히 묶여 있는 상태였다. 전신이 나른하여 손가락 마디를 움직이기도 싫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분명 영의정과 더불어 청계천 수표교위를 거닐었었다. 그래. 건방진 젊은 사내를 만났었고 그가 손을 펼쳐왔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날 아는가? 내게 무슨 짓을 하였는가?”

선전관 조영은 다소 두려운 목소리로 주변을 향해 물었다. 정면으로 부터 냉랭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먼저 그대에게 가해질 고문에 관해서 잠시 소개하지. 방금 전에 이곳으로 옮겨질 때를 기억하지 못했을 거야. 자네의 혈도를 제압한 곳은 목에 있는 천주라고 하여 잠시 몸을 마비시키거나 혼절 하게 만든다. 그 강약의 정도에 따라서 물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부위고. 내가 지금 관심을 갖는 곳은 그대의 하음(下陰)에 해당하는 혈과 간과 배꼽 사이에 있는 혈도 제문(臍門), 그리고 신경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척추의 척심(脊心), 늑골의 말단에 붙어서 인체를 무력하게 만드는 소요(笑腰)와 뇌신경과 밀접한 아문(啞門)을 차례로 제압하고자 한다. 그리되면 그대는 참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야.”

조영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상대는 위협만 했을 뿐인데 벌써 사지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슨 소리냐?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넌 누구냐?”

아직 즐거운 인생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어. 자네는 제일 먼저 말을 하지 못할 거야. 의사 표현을 하고 싶으나 턱뼈와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침만 질질 흘리게 되는 것이고...짐승처럼 컹컹 거릴 것이지. 신경의 마비와 이상으로 평생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되어야 하고, 회음의 혈도가 파괴됨에 따라서 생식기로부터 끊임없이 액체가 줄줄 흘러내린다. 그때마다 반복적인 경련이 엄습하지. 물론 쾌감인지 고통인지 알 수 없는 증세와 더불어서.”

듣기만 하여도 오싹 소름이 끼쳐왔다. 그것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고문의 방법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불구(不具) 중에서도 생병신(生病身)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 아닌가. 선전관 조영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이보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한 가지 빼 먹었군. 이 고문을 당하게 되면 스스로 죽기를 희망해도 그럴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 신경의 마비로 사지가 흐느적거려서 말이다.”

그만! ...만 하시오. 원하는 게 대체 뭐요?”

사내는 짧게 대꾸했다.

없어.”

선전관 조영은 차라리 빨리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부디 죽여 주시오.”

그럴 것이었다면 내 힘들여 고문 방법을 무엇 때문에 그대에게 설명 했겠나.”

조영은 이제 제 정신이 아니었다. 거품을 물면서 하소연 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이런 고문을 당해야 한단 말이요? 이보시오....제발 원하는 걸 말해 보시오. 이유를 알고 당해도 당해야 할 거 아니겠소!”

사내는 잠시 머뭇거렸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싶었다. 상대가 혼자라고 생각이 든 조영은 기회를 잃지 않고 매달렸다.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내게...기회를 달란 말이오. 다 들어 주겠소. 내 목숨도 드릴 것이니 부디 내 몸에 그런 가혹한 짓은 말아 주시오!”

좋다. 기회를 주마.”

선전관 조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살벌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통제사에게 받은 장계를 어떻게 처리 했는가?”

이것이었던가? 조영은 숨을 들이켰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자신을 위안했다. 분명 이순신과 연관이 있는 작자라고 생각하자 오기(傲氣)가 발동했다. 수표교에서 기습을 가했던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가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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