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_유광남

조영은 차츰 분위기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를 이리 대하다니! 크게 후회할 것이다.”

국청에서 오리발을 내밀던 선전관 조영이었다. 순순히 입을 벌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제는 처음의 두려움도 약간 가신 듯 목소리에 힘까지 실었다.

통제사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의금부로 가자! 거기서 사내답게 털어놓자!”

어디선가 불쑥 손이 튀어 나왔다. 갓을 통째로 찌그러뜨리며 조영의 상투를 움켜쥐었다. 결박당해 있는 조영이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고는 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

화끈한 통증이 목 부위에서 시작되었다. 상대는 한 손으로는 상투를 틀어잡고 다른 손으로는 턱 아래 관절을 지그시 눌러왔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붕어처럼 입만 벌리고 비명은 지르지 못했다.

끄끄......”

경고는 더 이상 없다. 난 타협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널 원래의 생각대로 처리하마!”

그는 지옥의 염라사자처럼 내뱉었다. 뼈 속까지 시려오는,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조영은 더 이상 허세가 통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그는 다시 살기위해서 발버둥 쳤다.

............”

선전관 조영은 고개를 위 아래로 심하게 끄덕였다. 말을 내뱉을 수가 없기에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는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야 한다. 끔찍한 몰골로 죽을 수도 없다. 그는 사력을 다하여 몸으로 표시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실토하겠노라고! 사내가 상투를 놓아주고 하관의 혈도도 풀어주었다.

끄끄......”

조영은 그래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로 대답한다. 그대는 병신년, 이순신의 장계를 받아왔지!”

선전관 조영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그러자 다소의 거리 저편에서 약간의 동요가 일어났다. 조영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미세한 반응이었다. 탄식이 흐르고 그들 사이에 눈빛이 오고 갔다. 영의정 유성룡을 비롯하여 도원수 권율과 홍의장군 곽재우, 장예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이달 초 병조판서에 오른 오성대감 이항복이 긴장한 모습으로 사내 김충선과 선전관 조영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장계는 수순에 의해서 물론 예조로 넘어 갔을 테지?”

조영은 다시 고개를 끄덕여 확인했다. 사야가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도승지는 모른다 하였다. 그대는 장계의 행방을 아는가?”

조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표현했다. 사야가는 집요했다.

예조에서 그럼 도승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말이로군. 그대도 그리 생각 하는가?”

선전관 조영은 부정했다.

도승지가 모를 리가 없다는 이야기로군.”

조영은 대답하고 싶었다. 목소리가 겨우 갈라져서 가느다랗게 흘렀다.

.........

사야가는 조영의 턱을 다시 어루만졌다. 양손으로 목 주변을 비벼주고 물도 마시게 했다. 통증과 압박으로 시달리던 목이 한결 시원해졌다. 조영은 술술 털어 놓았다.

도승지는 분명 알고 있소. 내게 장계의 날짜를 변경하라고 지시 했거늘.”

서애 유성룡과 권율, 오성대감과 곽재우 등이 숨도 멈추고 긴장감을 유지하며 듣고 있었다.

도승지 오억령이 장계를 올린 날짜를 변조하라 했다고?”

그렇소.”

어째서 그랬나?”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아니 그건 아마도 어명이 아니었겠소? 전하의 명이 없었다면 도승지가 구태여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선전관 조영은 이제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진상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었다.

날짜를 바꾼 연유가 무엇인가?”

전하의 뜻을 어찌 알겠소만, 그건 통제사를 징계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소이까. 이순신은 방자 하였소. 임금님에게!”

김충선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야차의 심장을 지니고 있는 고문관이었다.

그래서 왕이 통제사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대가 올린 장계의 날짜를 위조하였군.”

짐작하건데......”

장계의 내용은 통제사가 증언한 그대로 이겠지. 일본의 도발이 예상되니 함대를 부산으로 이동시켜 대비하자는 것이었지. 내 말이 틀리나?”

바로 그런 내용의 서장 이였소.”

왕이 그걸 폐기 시켰는가?”

선전관 조영은 그 사실만은 알 수가 없는 듯하였다.

거기까지는 모르오.”

김충선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상하지 않는가? 어차피 장계를 폐기할 작정이었다면 구태여 날짜를 변조 할 필요가 있었을까?”

조영은 수긍하였다.

듣고 보니 그렇구려.”

이제 사야가 김충선의 시선이 영의정을 비롯한 조선의 요인(要人)들에게 향했다. 다들 들었소? 모두 보았소? 이것이 바로 조선의 왕 선조의 추악한 음모요! 사야가 김충선의 목소리가 분노로 인해서 갈라 졌다.

만일 통제사의 요청이 이루어졌다면 왜장 가토와 그의 군사들을 바다위에서 몰살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요! 이순신의 함대는 조선의 바다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소! 조선의 왕 선조가 그 장계를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가토의 군대가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거늘, 왕은 오히려 그 이후에 어명을 거역했다고 통제사를 실각시키고 추국 하다니! 이건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한 누명이요! 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억울하오!”

진상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의 측면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조선의 충신들은 할 말을 잊고 있을 뿐이다. 절대 믿고 싶지 않았으나 또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임금의 행동에 당혹스러웠으나 추측은 가능 하였다.

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두려워한다!’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을 그들이 임금의 행위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통제사 이순신은 통제영에서 거행하던 망궐례를 수옥내에서 올리고 있었다. 그는 성심을 다하여 정릉동행궁이 있는 방향으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신 이순신은 불충하여 영어의 몸이 되었기에 감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행하던 망궐례를 그만 죄인의 몸으로 늦게나마 홀로 조촐하게 올리옵니다. 상감마마와 중전마마의 만수무강을 축원 하옵니다.”

 

24장 드러나는 진실

 

 

선전관을 핍박했다.

애초 그에게 가해진 수법(手法)은 거짓이다.

단지 이틀이 지나면 본래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세자 광해군의 관련은 전혀 뜻밖이고 충분히 놀랍다.

그들 선조 부자(父子)는 과연 모종의 합의가 존재 했었는가?

아버지의 죄업(罪業)에 자식도 가담한 것인가?

이순신의 장군에 대한 두려움이 왕권(王權)을 뒤흔든다.

누가 이순신의 장계를 숨겼는가?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320일 경술 )

 

!”

선전관 조영은 소스라쳐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악몽을 꾸었다.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꿈속에서 징그러운 벌레들이 자신의 몸뚱이를 사각사각 갉아 먹었다. 앙상한 잎사귀 마냥 피부가 사라지고 뼈와 혈관이 드러났다.

영감, 대관절 무슨 일이요? ”

조영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보고 있는 부인에게 되물었다.

여기가 어디요?”

집이지 어딥니까. 인사불성이 되셨어요. 그리 취하시다니...영감답지 않으셨어요.”

나 좀 일으켜 주오.”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던 조영은 간밤의 봉변을 생각하면서 몸서리를 쳤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살벌한 일이었다. 특히 그 사내의 마지막 비장한 어조는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장계의 행방을 알아내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외다. 시간은 이틀을 주겠소. 그때까지 찾아내지 못하면 당신은 애초에 경고 했던 그대로 처참한 불구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요. 내가 이제 혈도를 짚을 것이요. 이틀 내로 해혈 시켜주지 않게 되면 당신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살아있는 송장이 될 것이요. 그 증거로 몇 군데 혈도에서는 점점 더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영은 목과 옆구리가 뜨끔 거리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사내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 자의 말이 정녕 사실인가?’

조영이 몸을 일으키자 늑골 부위와 목 등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기를 연마한 무술의 대가들이 간혹 혈도를 제압하여 상대방의 몸을 마비시키거나 혼절 시킨다는 소문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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