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성패의 가장 핵심적 주체는 교사”
스승의 날 의미퇴색…교사들 스스로부터 외면

지금 교직사회가 불안, 갈등, 혼돈 속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교실붕괴에 이어 교무실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교직원간의 폭행사건이 잇따르고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도 늘고 있다. 교사의 교감 폭행사건에 이어 교감이 교사에게 주먹질한 사건이 일어나는가 하면 학부모가 교장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도 발생한다. 정치가 엉망이고 경제가 위축되고 사회가 어지러워도 학교만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 왔고, 그러기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교육활동의 가장 중심적 존재’교사’
박봉에다 지나치게 많은 잡무, 수업시간에 교사의 이름을 마구 부르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교사들이 처해 있는 현실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수업 잘해야지, 문제만 풀지 말고 원리도 짚어주고 그래야지 하는데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또 대충이다. 실제 일선교사들은 매일 두세개씩 오는 공문 처리하랴, 수시로 바뀌는 제도에 따라 새로운 계획서와 시안을 만들다 보면 정작 수업 준비는 뒷전이라고 털어놓는다. 교육은 학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교사가 한다. 아무리 훌륭한 건물을 가진 학교라 하더라도, 아무리 최신식 시설을 돈들여 갖추어 놓은 학교라 하더라도 그것을 교육적으로 의미있게 작용시킬 줄 아는 훌륭한 교사가 없으면 좋은 학교가 될 수 없고, 좋은 교육을 해 낼 수 없다. 따라서 교사는 교육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다. 오늘날은 교육적 이론도 많이 발전하고, 현대적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아 훌륭한 학습기제도 풍부하게 갖출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이 지식이나 기술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인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교육 성패의 가장 핵심적 주체는 역시 교사인 것이다.

무너지는 교권… 피해 사례 급증

그러나 교권이 무너진 지 오래다. 일례로 제주 모 중학교 1학년 K양은 지난해 5월 3학년 선배의 지시로 친구들로부터 3만원을 뺐었다. K양은 노래방에서 1학년 학생들이 선배들에게 집단으로 매를 맞은 사건에도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다 못한 A(여) 교사가 K양의 팔뚝을 한 대 때린 것이 화근이었다. K양의 이모 등 3명은 학교를 찾아가 A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폭언과 반말을 쏟아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K양의 이모 등은 공무집행방해 및 폭행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인천 모 초등학교 B교사는 2002년 학기초 반 학생에게 편부 또는 편모슬하 학생을 위해 개설된 무료 특기적성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결손가정의 학생을 도와주겠다는 선의는 엉뚱하게도 송사로 이어졌다. 학부모가 “열등의식을 느끼게 했다”며 청와대 신문고, 교육청 등의 홈페이지에 자신을 비방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B교사가 고소해 학부모들은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학부모가 제기한 민사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다.
서울 모 여고의 교감은 한 여고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허위사실을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고, 강원 모 초등학교의 담임교사는 면담 도중 “우리 엄마는 고스톱도 잘 치고 놀기 좋아한다”는 학생의 말을 학부모에게 전했다가 학부모의 사이버 비방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배포한 ‘2003년 교권침해사건 및 교직상담처리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과 학교 난동 등이 2002년 19건에서 지난해 32건으로 68.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안전사고도 28건을 차지해 교권침해사건의 중요한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교총 관계자는 “학부모의 부당행위가 증가하는 것은 교육공동체 의식이 사라졌고 교원경시 풍조가 사회 전반에 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권추락이 오늘날의 교육위기 초래
스승의 날이 제정된지 올해로 23년을 맞지만 스승의 은혜를 다시금 기리고 기념하자는 이날의 의미는 날로 퇴색돼 가는 느낌이다. 교권추락, 교실붕괴, 교육위기로 진단되는 오늘날 우리교육의 현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영광과 보람의 하루가 되어야 할 스승의 날이 교사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는 정도다.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이 너도나도 우리의 교육현장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상황에서 무너진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추된 교권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교육당국이나 학교뿐 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 한번 추락한 권위를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는다는 것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닐뿐더러 교권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잡을 수 없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육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시민단체들이 스승을 위로하고 교권확립을 위한 각종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행사의 주체인 교사들은 오히려 시큰둥한 모습이다. 올해도 서울시내 초등학교의 절반 가까이가 스승의 날인 15일 하루 휴업을 하기로 결정했으며 일부 중학교와 고등학교들도 휴업에 동참할 계획이다. 학교측은 휴업의 이유로 자율학습,가족사랑 체험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촌지문제로 다시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 스승의 날 휴업이 이제 연례적인 일로 굳어질 모양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이날 하루만이라도 스승으로서의 대접을 받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은 어디로 가고 촌지시비로 곤욕을 치르기보다 차라리 집에서 쉬는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교총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사들은 사회의 스승에 대한 존경도와 예우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학교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학생들의 교권 경시 태도를 꼽았다. 교사들 스스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대해 불만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조차 교사들을 존경은커녕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교사들에게 성의있는 교육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교실이 바로 서기도 불가하다. 공교육이 무너져 학교수업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교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교사들 스스로의 진단이다. 또 학부모들의 그릇된 자녀교육으로 아이들이 버릇없이 자라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장악력이 떨어진 것도 교권실추의 원인으로 들고있다. 결국 빗나간 교육정책, 긍지를 갖지 못하는 교사, 가정교육의 부재가 오늘날의 교육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다.


교사의 권위와 위상 재정립 시급
보리밥에 김치뿐인 가난한 도시락마저 못 싸오는 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지난날, 배곯는 제자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씩 싸왔던 선생님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 볼세라 몰래 전해주던 선생님의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뿐 아니라 쓰라린 가슴까지 달랬던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아무데도 믿을 곳이 없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반년 넘도록 방치했던 중학생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것도 실은 스승이었다.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보일러를 고쳐주러 선생님이 소년의 집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열다섯 살 소년은 지금 이 순간도 백골이 된 어머니의 시신을 옆방에 둔 채, 전기도 가스도 끊긴 집에서 세상과 벽을 쌓은 채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스승의 진정한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어린 제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입은 가슴을 쓸어주는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의 권위와 위상을 세우기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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