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학연협회 조동욱 회장
충북도립대학교 교수

한국산학연협회 회장 조동욱 교수 ©최윤하

[시사매거진275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1000년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루었던 로마제국의 비결이 다름 아닌 패전 장수에 대한 ‘용서와 관용’이었다는 것.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제국을 지키고 정복지를 확장해 나갔던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수가 필요했다. ‘용서와 관용’을 통한 재출정의 기회가 제국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였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산학연협회 회장 조동욱 교수는 대한민국의 99.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에서 ‘관용지수’ 높이기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산학연협회(韓國産學硏協會)는 어떤 곳인가요?

1993년에 설립된 산학연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입니다. 산학연의 ‘산(産)’은 중소기업을, '학(學)’은 대학, ‘연(硏)’은 연구소를 뜻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99.8%가 중소기업입니다. 국가경쟁력을 육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자금, 고급인력, 장비가 부족합니다. 반면에 대학에는 고급인력과 장비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대학, 연구소를 연결해서 공동연구개발을 하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여기에 산학연이 자금을 지원합니다.

지난 10년간 산학연 협력 기술개발로 1조 1935억 원을 지원, 16700여 개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에 참여를 했습니다. 현재 220개 대학과 40여 개의 연구소와 다수의 중소기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산학연협회 회장 조동욱 교수 ©최윤하

‘관용지수(寬容指數)’를 높여야 된다는데 이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우리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 관용지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먹거리를 이끌고 갈 ‘창의력’과 무척이나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창의력 지수는 세계 31위. 그 이유는 바로 관용지수가 70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른 소리 즉 ‘딴소리’를 용납하지 못하고 ‘틀린 소리’로만 여기기에 그렇습니다.

일례로 컴퓨터 운영체제가 DOS였던 시절, 소프트웨어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이 제록스였습니다. 당시 제록스는 연구원에게 1년간의 연구 성과를 반드시 발표하게끔 했는데 그중 한 연구원이 파일을 지울 때 ‘Delete’를 치는 대신 휴지통에 집어넣도록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착안해 휴지통 하나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록스 회장은 이를 이해 못 해 그 연구원을 꾸짖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이 아이디어를 바로 수용해 오늘날 컴퓨터 운영체제가 윈도우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딴소리’입니다. 이를 잘 살펴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이자 새로운 시대의 ‘먹거리’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구글을 만든 게 바로 ‘3분 스피치’라는 대화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까지의 도착시간이 3분입니다. 회장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의견이 있는 사람이 동승합니다. 아무도 이를 제지하거나 막지 못합니다. 회사의 그 누구라도 거침없이 회장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오늘날의 구글이 존재하는 겁니다. 바로 ‘딴소리’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수많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사라지는 것은 바로 CEO의 고정관념과 변화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서 온 것입니다.

한국산학연협회 회장 조동욱 교수 ©최윤하

4차 산업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은 어떤 환경에서?

주로 주변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혼자 사색하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성장환경이 조실부모였습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환경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성장시키는 원인이 됐습니다. 즉 잔소리 속에서 자라면 창의성을 상실한다는 겁니다. 상상력 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피어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과거 농경사회는 일주일 내내 일해야만 겨우 먹고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산업사회 들어와서는 농기계를 비롯하여 각종 기계들의 도움으로 하루 쉴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식과 정보를 머리에 많이 넣는 사람, 잘 뽑아 쓰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습니다. 이때 나온 구호가 ‘아는 것이 힘’ ‘딴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외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입니다. 그러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지식 정보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얻어지는 시대, 주 5일제 지식정보화 사회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4차 산업시대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까지 대체하게 됩니다. 나흘 일하고 3일 쉬는 날이 곧 도래합니다. 이러한 주 4일제 속에서 사업적 아이템이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여기에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바로 충분한 여가 시간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템과 이를 함께 즐길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하루가 빠르게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지능 사회'로 세대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학기술이 사회를 리딩 하는 시대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독창성 있는 과학기술인들을 배출할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창의력이 곧 먹거리의 대표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시대가 됩니다. 그래서 ‘관용지수’도 높여야 하고 ‘딴소리’도 적극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대학 강의실에서 조동욱 교수

오랫동안 캠퍼스에서 후학들을 양성해 오셨는데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는 어떨까요?

국가를 먹여살리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로 인재, 천연자원, 시스템입니다. 대학의 역할은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데 대학을 이끄는 리더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한ㆍ미 명문 대학의 MOU가 있어서 두 학교의 총장들이 만났습니다. 서로 각자의 대학을 소개하고 자랑하는데 한국의 총장은 ‘우리 학교의 졸업생들 중에 판검사, 장차관, 사법, 행정고시 패스자가 몇 명이고, 수능 점수, 내신등급이 어떻고…’ 이에 반해 미국의 총장은 ‘졸업생 중에 누가 A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몇 명을 고용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국가경쟁력이 얼마만큼 향상됐고 B라는 사람은 C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맨 마지막에 내가 참 답답한 게 있는데 졸업생보다 중퇴생이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내 목표는 졸업생이 중퇴생보다 더 잘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시사합니다. 무엇이 대학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할까요?

조동욱 교수, 아내와 함께(김영숙,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악원 디플롬) ©최윤하

과학자로서 문화예술계에 특별한 애정이…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음악이 좋아 학교의 음악실에서 내내 살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음악시간이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고 열정이 과해서 그런지 시키지도 않은 원어 가사를 외우며 가곡을 즐겨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훗날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났는데 하필이면 성악을 전공한 음악가이지 뭡니까? (웃음) 제 전공 또한 소리와 관련된 생체신호 분야입니다. 사람의 음성 신호를 분석해 건강, 심리상태를 진단합니다. 이렇게 음악은 제 인생을 통틀어 운명처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버컴브롬’이라는 노래팀을 결성해서 몇 년 전부터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노래를 하고 문화예술사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시는 이상권 교수님이 기타 반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로 소규모 무대를 통해 음악과 토크로 사람들과 즐거운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여러 팀들과 콘서트 계획이 있었지만 코로나 위기로 그만 취소됐습니다. 비록 아쉬웠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좋은 무대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오버컴브롬 조동욱, 이상권 교수

평소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데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공연이 있었나요?

1978년에 내한했던 뉴욕필과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공연을 했는데, 지금 세대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그 당시엔 모든 공연 전에 애국가를 불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연주 곡이 구소련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이었습니다.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 절대로 연주될 수 없는 ‘금지곡’이었습니다. 도저히 공연이 성사될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어떻게 설득하고 관철시켰는지 번스타인의 리더십이 대단합니다. 결국 이 곡이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연주된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옳다고 생각한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또한 과학계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승화강(水昇火降), 물과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한의학의 치료법에서 나온 말이다. 마치 이 말이 제법 잘 어울릴 듯한 사람, 조동욱 교수는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말을 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현재 충북도립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4년 연속 등재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각종 방송과 언론 기고, 강단에서 그의 열정적인 토크를 경험할 수 있다.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하는 능력'을 강조한 윈스턴 처칠의 성공에 대한 정의처럼 옳은 일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던지는 그에게서 대한민국 과학계의 희망을 기대한다.

한국산학연협회 회장 조동욱 교수 ©최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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