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광남

 

[시사매거진286호] 김충선은 왕의 의중을 읽었다. 만일 선조의 아집이 걷잡을 수 없었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왕은 그래도 현명했다. 광해군과의 날카로운 대립을 고려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장계의 출현과 통제사 이순신에 대한 민심이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김충선이 지적했던, 바로 후금(後金)을 꿈꾸는 건주여진(建州女眞) 오랑캐의 약진이었다. 임진년에 족장 누르하치는 조선에 대하여 파병(派兵)을 제의하여 함께 왜적을 물리치고자 권유했었지만 조선은 오랑캐와 손을 잡을 수 없다며 거절했었다. 5년여가 지난 지금 건주여진은 명나라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국력이 성장한 것이다. 김충선은 해결 방안을 꺼내 놓았다.

“장계는 다시 예조로 보내겠나이다. 미리 말씀드렸지만 이 모든 오해는 선전관 조영이 통제영에서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받아 오는 도중에 실수로 유실(遺失)하고, 그 죄가 두려워서 장계를 위조하고 숨긴데서 비롯되어진 것입니다.”

통제사 이순신에게 관련된 가장 큰 죄목인 어명을 거역한 불경죄를 선전관 조영의 실수와 잘못으로 몰아가자는 내용이었다. 김충선의 재차 강조한 제안은 왕의 체면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 기발한 방도였다. 왕 선조는 부산으로의 함대 이동을 회유해 달라는 이순신 장계의 내용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오해를 했었던 것으로 마무리 하자는 것이 아닌가. 약삭빠른 선조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리하도록 하자. 과인은 금일 처음으로 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을 올려라!”

사야가 김충선은 왕에게 다가서며 두 손으로 공손히 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를 올렸다. 왕은 이미 오래 전에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그것을 무시하고, 하루가 다르게 왕권을 위협해 오는 이순신을 제거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도승지의 은밀한 전갈에 의하면 이미 장계의 출현을 영의정 유성룡은 물론이고, 도원수 권율, 홍의장군 곽재우, 거기다가 병조 판서 이항복까지 확인했다고 하지 않던가. 더 이상 선조는 무리수를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왕은 사야가 김충선에게 더 이상 장계에 관한 이야기를 함구하고 화제를 돌렸다.

“자헌대부, 과인은 주변국에 대한 그대의 식견(識見)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과 명국, 그리고 오랑캐 여진에 관하여 더 들려줬으면 싶은데 어떠하냐?”

제 33장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꿈인가?

이순신의 조선을 위해서 난 꿈을 꾸었다.

일본 천황의 항복을 새로운 역사로 시작할 것이다.

이제 명나라가 아니라 여진이다.

누르하치를 만나보니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강해질 것이다. 일본도, 여진도, 이제

조선도 나로 인해 매우 강해질 것이다!

조선의 도원수, 권율의 목을 베었다.

유성룡의 머리에 혼비백산(魂飛魄散) 하였다.

단지 꿈인가?

(이순신의 심중일기(心中日記) 1597년 정유년 3월 29일 기미)

칠일간의 항해 끝에 함대는 무사히 부산으로 입항했다. 척후선을 통하여 소식을 접한 도원수 권율과 영의정 유성룡, 병조판서 이항복 등이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이순신 함대의 승리를 환호하였고 일본 천황을 극진히 영접했다. 병조판서가 이순신에게 속삭였다.

“일본에서 내전이 발생하여 조선에 침입했던 전 일본군이 앞 다투어 퇴각하고 있소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규모 내전이 발생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거기 조선의 평화와 이순신의 조선을 위해서 헌신하는 김충선이란 사나이가 존재한 것이다. 이순신은 울컥 감동이 복 바쳐 올랐다. 바다와 항구와 육지에서 이순신을 연호하며 함성을 지르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일본인이었으며 조선인이길 원했던 한 사내의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생애에 경외하며, 조선의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역성혁명의 중심에서 마지막 전쟁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제일 먼저 외교에 능한 조카 이분을 불렀다.

“명나라 전군도독부 도독이든지, 아니면 총병(摠兵)이나 부총병(副摠兵)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회동할 수 있도록 주선하라.”

거사의 성공 여부는 명나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조선에 진주(進駐)해 있는 군사의 수는 약 5만 여 명이었다. 명나라는 만일 일본과의 협상이 결렬되어 2차 왜란이 재발하면 20만 여 명을 추가로 파병한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새 왕조가 설립되려면 명나라의 승인을 반드시 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야가 김충선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순신에게 역설했다.

“장군, 왜 이러십니까? 이순신의 나라를 명국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한단 말입니까?”

이순신의 장자 이회가 의아해 하며 의견을 내 놓았다.

“대국의 추인이 있어야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게 아닌가?”

“형님, 그건 이순신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린 일본의 천황도 포로로 잡은 무적의 군사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명나라는 감히 이순신의 조선을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아니, 어떤 경우라도 이제 우리는 주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당당한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이분은 평소 학자답게 소신있는 행동을 하는 외교전문가였다. 그가 판단하기에는 김충선의 말이 합당하지가 않았다.

“일본의 천황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아냈다고 해서 명나라를 우습게 봐서는 안 돼. 대국을 겨우 섬나라와 비교할 수는 없지.”

김충선이 발끈했다.

“만일 조선이 개입되지 않고 명나라와 일본의 전쟁이었다면 이 전쟁은 열이면 열, 일본이 모두 승리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이순신의 둘째 아들 울이 고개를 저으며 나선다.

“에이, 그럴 리가 있나? 명나라의 대군을 상대로 어찌 왜적이 승리할 수 있단 말이야? 그건 아니다.”

“그만큼 명나라 군사들이 형편없는 오합지졸(烏合之卒) 이라는 거지. 그들은 조선에 진입해서 우리 양민들에게 피해만 잔뜩 주고 실제 전투다운 전투는 몇 차례 해보지도 못했어. 환관이 판을 치는 썩은 나라에 강한 병졸이 있을 수 없는 이치야. 거기 비해 일본의 군사들은 단련되어 있어. 그들은 민첩하고 제대로 된 전력이야.”

이분이 자존심이 상했던지 약간 따지듯이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나라는 엄청난 대국이야. 절대 무시하고는 대업을 이룩할 수가 없을 거야. 장담하지만.”

“분형, 장담하지 마! 그럴 필요 없어. 현재 명나라를 노리고 있는 누르하치의 여진은 위협적인 존재야. 그들은 용맹한 칸의 부하들로 매일 단련하고 있어. 그들 부족은 거대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 그게 바로 잃어버린 금나라를 다시 건국하는 거야! 그 목표아래 전체의 부족이 똘똘 뭉치고 있지! 그래서 그들이 훨씬 강해. 명나라는 멀지 않아서 붕괴 될 거야. 그런 명나라에게 우리가 왜 고개를 굽히고 승낙을 받아야 하는 건데?”

사야가 김충선의 분석은 상당히 예리했다. 또한 근거가 존재하므로 설득력도 있었다.

“그럼 명나라 장군들과의 회동은 불필요 한 건가?”

“그건 아니야. 장군님이 통보를 하는 것이지...승인을 받기위한 형식은 아니라는 거야. 회동해서 나쁠 것은 없어.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목을 누르하치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고.”

김충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국 명나라를 거침없이 짓밟았다. 경청하던 이순신이 기어코 입을 열었다.

“충선아,”

“예...장군....아버님!”

“네 말이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실내에 은밀히 모여 있던 이순신의 수족들은 저마다 경악하고 만다. 그들은 설마 이순신이 그런 완전한 지지를 사야가 김충선에게 보내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여진,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그들과 화친을 맺고, 명나라를 압박하자는 것이 너의 뜻이냐?”

김충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아버님의 뜻을 왜 제게 물으시는 겁니까?”

“그래...? 넌 벌써 나의 의중을 읽었단 말이냐?”

김충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순신의 조선이 지금보다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대국 명나라를 적절하게 약화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진족의 칸 누르하치와 손을 잡고 명나라를 토벌한 뒤, 누르하치와 대국의 영토를 반으로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이순신의 막하 가족들은 이 허무맹랑한 소리에 저마다 입을 떡 벌리고 누구도 반문하지 못했다. 대국의 영토 반을 조선이 차지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순신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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