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희 시인
안현희 시인

[시사매거진299호] 1990년대 이후 ‘폐쇄적 문화’를 일컫는 경제적 신조어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이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전자제품이 갈라파고스섬과 같이 일본 자국 내 고립되어 국외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다.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ápagos)’의 합성어인 ‘잘라파고스(Jalapagos)’로도 통용된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섬(Galapagos Islands)’은 주도 산크리스토발 외에 19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정식 명칭은 ‘콜론 제도(Archipiéago de Colon)’로 우리나라 전라북도(8,061㎢) 크기보다 조금 작다. 대륙과 동떨어져 고립된 까닭에 독특한 고유종과 희귀종 생물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7년 게이오대학 교수이자 휴대전화 인터넷망 I-mode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夏野剛)는 총무성(MIC)이 발표한 <일본 무선 전화 시장 보고서>에서 자국의 전자제품 상황을 이 섬에 비유해 설명했다. IT 분야의 독보적 발전을 일으키며 소니와 파나소닉 열풍을 일으켰던 일본의 전자제품들이 내수 호황에 안주하며 고립을 자초한 까닭에 현재는 세계 흐름에 뒤처져 있다는 분석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하며 10년 가까이 상주하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201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이창민 저자는 <지금 다시, 일본 정독>을 통해 그들 일본에 대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과거 지중해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마그레브 상인이나 길드 조직처럼 ‘다각적 징벌 전략’과 ‘상인들의 결탁’으로 도시의 상업자본을 끌어들여 ‘가부나카마(株仲間, 상공업 동업조합)’를 운영했던 일본인. 그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뛰어든 종합상사와 근대 일본식 개량음식인 돈가스와 단팥빵, 오므라이스로 대변되는 ‘화혼양재’의 개량 능력 덕분에 근세기 일본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나라, 일본’ 시절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 상실, 대기업과 유수 기업의 해외 진출과 정착, 자국 내 소부장 기업으로 연명, 20년 넘는 장기적 경제 침체, 코로나19로 인해 불발된 2021년 도쿄올림픽, 소비 자체를 싫어하는 혐소비(嫌消費) 세대의 등장은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껌 씹는 것은 피곤하다. 맥주 따위는 써서 못 마신다. 지하철이 있는데 차를 사는 것은 바보다. 대출을 받아서까지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p265)는 것. 무엇보다 세계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와 인터넷 대신 아직도 팩스, 도장, 종이를 고집하는 폐쇄사회 일본 시스템이 문제다.

따라서 제4차 산업혁명이 몰아치는 일본의 미래에서 ‘잘라파고스’ 일본은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일본 미디어에서는 3~4년 전부터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기조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락하는 일본 경제는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은 이른바 ‘투트랙 전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다. 역사 갈등을 둘러싼 문제들은 그것대로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하겠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상대의 문화 콘텐츠는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다(p321)”고 전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하며 두 나라 모두 상생과 협력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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