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2023년 8월 5일 화성아트홀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11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무대는 예술혼이 꽃을 피우는 화원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예술가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대타 출연으로 신데렐라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리더들의 체계적인 육성으로 신예 예술가가 길러지기도 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단체치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립오페라단이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기획하면서 예비 스타를 발굴하여 역량 위주로 캐스팅한 무대를 선보인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우리 무대에서는 처음 선을 보였지만 이미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 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고 내년 시즌 베를린 코미쉐 오퍼에서 바그너 <방황하는 화란인>의 에릭으로 롤 데뷔가 예정되어 있는 테너 송성민의 출연은 화제를 모았다.

7년 전 독일 자르브뤼켄 국립극장에서 롤 데뷔 이후 오랜만의 타미노다. 기품 있는 미성의 가수로 오페라 무대에 살인적인 연속된 고음을 요구하는 롯시니 <윌리엄 텔>의 아르놀드로 데뷔한 이력이 말해 주듯 고음에서 안정감 있는 테크닉이 돋보였다.

무대를 부지런히 누비며 활달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도 충실했으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느린 패시지에서 보여준 우아하고 깊이 있는 음악이었다. 목소리로 연기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가수였다.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파파게노를 연주한 바리톤 최성규는 바젤 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코믹하게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성자를 연상케하는 고귀하고 깊숙한 저음으로 노래했다. 파파게노치고는 엄숙한 울림이기도 했으나, 순도 높은 성악적 완성도였다.

이날 필자는 배역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난 연주를 한 가수를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따스하고 상냥함과는 거리가 있으나 가볍고 매력적인 파미나를 연주한 최예은과 밝은 톤으로 힘차고 고음이 강조된 자라스트로를 부른 조성준도 개성 넘치는 해석을 보여주었다.

문혜영은 이 징슈필의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인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를 느긋하고 우아하게 해석했다. 밤의 여왕다운 카리스마는 부족했으나 순음악적 접근이 무척 효과적이었다. 다만 1막의 ‘떨지 말거라, 아들아’는 보다 안정적인 호흡이 필요했다.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의 새로운 프로덕션은 모차르트가 본작을 통해 추구했던 징슈필의 본질인 높은 예술성과 깊은 대중성을 모두 구현했다. 게다가 노래는 독일어로 불렀지만 대사는 우리말로 처리하면서 더욱 관객 친화적으로 접근했다. 김동일은 그간 국립오페라 무대를 통해 현대적인 디스플레이 기술을 통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해 왔는데 이번에도 이런 점을 잘 살려서 작품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철학적 이해가 필요한 아리아에 담긴 내면의 심상을 키워드로 풀어 무대에 투사함으로 작품의 심오함에 편한 접근을 도운 점도 훌륭했다. 제한된 여건에서 최고의 예술혼을 발휘한 권민석의 리드도 역시 훌륭했다.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사진_국립오페라단)

소규모 편성의 알테 무지크 서울을 지휘하여 사운드의 무게가 필요한 대목에서 물리적 한계는 어쩔 수 없었으나 발랄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해석을 보여주었다. 부분적으로 고르지 못한 대목이 있었으나, 음악 전반의 훌륭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대단한 음악적 영감을 보여준 대목이 많았다. 2막 초반, 여왕의 세 시녀와 타미노, 파파게노의 중창 장면 그리고 모노스타토스의 아리아 연주 중 목관 앙상블은 오케스트라로부터 놀라운 합주를 이끌었다.

이날의 무대를 시작으로 경상남도 밀양과 경기도 안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국립오페라단의 전국 순회 프로덕션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의 대중화가 실현된다. 작년 광주에서 선보인 푸치니 <잔니 스키키> 역시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프로덕션이었다는데, 올해 가을 경기도 평택을 시작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음악 애호가의 사랑 속에 롱런하며 더 많은 곳에서 사랑받길 기원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포스터_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징슈필 '마술피리' (포스터_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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