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20세기가 산업문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태문명 전환의 시대다. 근대 이성에 기반한 산업문명의 패러다임이 5세기 희랍의 프로타고라스가 선언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선언에 입각한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에 기초했다면 전 지구적 공존에 기반한 생태문명의 패러다임은 기존의 가치 체계인 도구적 합리주의, 과학기술주의에 입각한 인간중심주의적 세계를 극복하고 관계와 상호의존을 원리로 하는 생태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지구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 생활양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 ‘생태(eco)’라는 단어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돼 있는지에 대한 사실과 더불어 어떻게, 그리고 왜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를 모두 담고 있다. 시스템(system)을 일컫는 ‘체계’ 역시 생태 속에 존재하는 생물들이 상호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심지어 생물 간의 관계뿐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과의 관계까지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생태계’는 모든 생명체와 그를 둘러싼 조건의 관계이며 ‘전체(Gaia)’를 고려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집은 땅을 가리키고, 시스템은 땅이라는 집에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의 삶의 원리 혹은 그 삶의 구조를 뜻한다. 생태계의 논리는 바로 이 가족구조의 뼈대이자 그 뼈대가 작동하는 원리인 셈이다.

생명이 있건 없건 모든 사물은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Gaia)는 생물과 생물,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얽혀있는 유기적 시스템이다. 모든 생명체 특히 생명체의 전형인 유기체 역시 여러 기관들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그 생명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시스템(체계)이다.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 역시 여러 작은 기관이 상호 작용하는 작은 생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생태계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는 ‘관계와 고리’에 있다.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모든 사물은 하나의 시스템이고 시스템의 각 부분은 따로 떨어져 있거나 고립돼 있지 않고 유기적이다. 그것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는 관계 구조의 생태 공동체이다. 

따라서 생태문명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지구 전체의 생물종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말로 생태와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전환의 방향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태문명은 ‘생명중심주의’ 또는 ‘지구중심주의’적 생활양식이다. 산업문명이 인간중심주의라고 한다면 생태문명은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모든 생명, 더 나아가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망인 지구시스템과 지구질서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명이다.

지구 내 모든 생명과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공생과 공존을 우선하며 인류사회 역시 경쟁과 배제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공유함으로써 적절한 물질적 수준과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문명을 만들자는 생태문명 전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토피아적인 관념인 것 같지만 인류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길이다. 사실 생태문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이미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에 나타나 있다. 유엔은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 있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라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생태문명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적절한 이름으로 보인다. 생태라는 말은 생명이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자기 조직하는 유기체의 능력에 초점을 둔다면 문명이란 말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진정으로 겸허한 관계를 맺는데 요구되는 문화적, 제도적 전환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세계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요 시스템이며 시스템의 원리는 상호의존적 관계와 공존에 있다는 생태적 윤리, 과학기술이 생태계 위기의 주범이라는 산업문명에 대한 반성,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생명중심주의적 사유, 인간보다 생태계가 우선 한다는 생태중심주의적 세계관,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며 인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생태계 보존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이 모든 자각이 생태문명 전환의 배경이다.

이렇듯 생태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세계관의 전환, 행동양식의 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문명사회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다. 한마디로 개체적 자아(self)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러한 자아의 배후에 자연과 함께하는 더 큰 자아(Self)를 실현해야 한다는 격언이 생태문명 전환의 핵심 슬로건이다.

이제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지구와 호혜적 균형을 이루면서 평화, 아름다움, 창조력, 물질적 만족이라는 오랫동안 부정돼 온 인간의 꿈을 이루는 것은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도, 이를 부추기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자원 착취적 경제구조를 억제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지구를 보호하거나 우리 자신과 다양한 생명을 파괴하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자신과 지역사회, 소유와 존재, 다양성과 획일성, 경쟁과 협동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산업문명사회를 재고찰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명체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남고 번성한다. 이제 생태적 원리로 우리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 생태문명 전환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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