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동의대 철학윤라문화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동의대 철학윤라문화학과 외래교수

매년 2월 셋째 주 일요일은 태평양 고래 재단이 지정한 '세계 고래의 날(World Whale Day)'이다. 이날은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의 현실을 알리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1980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시작해 44번째를 맞는 올해 세계 고래의 날은 2월 18일이다.

공룡보다 몸집이 더 큰 것부터 인간의 지능에 버금가는 두뇌의 소유자까지 고래는 우리에게 늘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코끼리 20마리의 몸무게에 길이가 30m에 이르는 대왕고래는 쥬라기의 거대 초식공룡 보다 더 컸으며 지금껏 지구상에 출현했던 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백상아리의 간을 좋아하는 바다의 포식자 범고래는 고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에게 친근한 돌고래도 4~5세 아이 수준의 IQ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만의 언어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한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 완벽히 적응한 고래는 진화의 역사에서 불가사의한 존재다. 하지만 세 차례의 혹독한 빙하기를 맞아 지구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대부분의 육지 동식물이 멸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환경 변화가 적은 바닷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결과적으로 풍부한 먹이와 더 넓은 바다 공간을 생활 터전으로 선택한 고래는 지구 생태계의 적응 능력에 한해서는 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났던 셈이다. 덕분에 고래는 번성했다.

그런데 이 고래가 이제는 멸종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그것도 인간에 의해서. 인간에 의한 해양 오염과 불법적인 고래 사냥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상업적인 고래잡이는 최근 들어 감소했다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횡해지고 있으며 이외에도 선박과의 충돌과 그물에 걸리는 일, 플라스틱 쓰레기와 소음 공해 등으로 생존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이제 그 많던 고래를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90여 종의 고래 가운데 약 20여 종의 고래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140만 마리의 고래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래를 보호하고 구하는 일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나 지구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해양생물학자들은 고래, 특히 대형 고래가 대기 중 탄소를 포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래는 긴 수명을 사는 동안 몸에 탄소를 축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데, 그렇게 함께 격리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한 마리당 평균 33톤이나 된다고 한다. 

고래가 환경에 기여하는 것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고래는 심지어 똥으로도 지구를 살린다. 깊은 바다의 생물을 먹은 고래는 숨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고 그곳에서 똥을 눈다. 엄청난 양의 고래 똥은 수면 위를 떠다니는 식물 플랑크톤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바다 위의 식물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먹고 신선한 산소를 내뿜는데 그 양이 육지 전체에서 만들어지는 양과 맞먹을 정도다.

고래와 함께 있는 식물 플랑크톤은 우리 대기 중 산소의 50% 이상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40%인 370억 톤가량을 포획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양은 1조 7000억 그루의 나무와 맞먹는 수준이며, 4개의 아마존을 모아놓은 것과 비슷하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고래가 어디를 가든 식물성 플라크톤의 양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고래의 배설물에 철분과 질소 같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영양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고래는 똥으로도 지구를 살리고 있는 셈이다. 고래가 심해의 영양을 바다 위로 옮기는 이 현상을 전문가들은 '고래 펌프'라고 부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상업적인 고래잡이가 이뤄지면서, 생물학자들은 전체 고래의 개체수가 과거의 1/4 이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이기도 한 대왕고래의 경우 겨우 3%만 남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래의 수가 과거의 4~5백만 마리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양 역시 크게 증가될 것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1% 늘어나면 연간 2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추가적으로 포집될 수 있다.

이는 20억 개의 다 자란 나무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고래의 평균 수명이 60년 이상인 것을 생각하면, 그 영향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이것만 하더라도 고래를 구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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