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설립된 부산 강제수용시설 '덕성원'
지난 2월, 덕성원 피해생존자 협의회 결성
피해생존자들, 진실화해위에 '직권조사' 요구

[시사매거진 성재림 기자] 1950년대의 부산시 동래구(현 해운대구) 중동. 그곳에는 아동복지시설의 탈을 쓴 '덕성원'이 있었다.

안종환 대표가 그린 덕성원 내부 지도.(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안종환 대표가 그린 덕성원 내부 지도.(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안종환 대표의 덕성원 입소 당시 작성된 아동카드. (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안종환 대표의 덕성원 입소 당시 작성된 아동카드. (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덕성원을 아십니까?"
"덕성원에서 우리는 그저 도구, 물건일 뿐이었습니다." -덕성원 피해생존자 협의회 안종환 대표

한창 사랑받을 나이의 원생들. 다만 그곳에서는 △막노동 △가혹행위 △종교 세뇌 △성추행·성폭행이 반복됐다. 안 대표는 3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혼자 덕성원으로 보내져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덕성원에서는 구타가 일상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야외 화장실 똥통을 날라야 했다. 덕성원 설립자 서 모 씨의 첫째 손자가 자위행위를 강제하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피해생존자 A 씨가 복용하는 정신과 약.(사진_성재림 기자)
피해생존자 A 씨가 복용하는 정신과 약.(사진_성재림 기자)

"지금도 트라우마 때문에 약 없이 잠들지 못합니다." -피해생존자 A씨(남·50대)

A씨는 덕성원에서 밤마다 당했던 성추행의 기억 때문에 밤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원장 김 모 씨를 비롯해 원생들에게 '개 패듯' 맞는 것 역시 매일 반복됐다. 하루는 몽둥이로 맞다 기절 직전에 이르며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를 느꼈다. 추운 겨울, 속옷만 입힌 채 기둥에 묶어두기도 했다. 13살 무렵에는 원장 아내 서 모 씨가 바지를 내리고 신체 부위를 관찰하며 수치심을 줬다.

덕성원에서 아동들이 농작물을 캐며 노동하는 모습.(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덕성원에서 아동들이 농작물을 캐며 노동하는 모습.(사진_안종환 대표 제공)

"덕성원 내부 체계는 말 그대로 쳇바퀴였습니다." -피해생존자 B씨(여·50대)

하교 후, 그들은 노동해야 했다. 자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일상이 반복됐다. 폭행과 성폭행이 밥 먹듯 일어났다. 특히 원장 큰아들 김 모 씨에게는 남녀노소 모두가 성폭행 대상이었다. B씨는 원생에게 배를 맞아 장이 파열되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히기도 했다. B씨는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며 "기억이 잊히지 않아 사회생활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B씨는 불을 켜지 않고는,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다.

휴대폰을 내보이며 설명하는 안 대표의 모습.(사진_성재림 기자)
휴대폰을 내보이며 설명하는 안 대표의 모습.(사진_성재림 기자)
원장 아내 서 모 씨가 안 대표의 인감도장으로 신용카드를 개설하며 작성한 서류. 두 서명의 필체가 동일하다. (사진_성재림 기자)
원장 아내 서 모 씨가 안 대표의 인감도장으로 신용카드를 개설하며 작성한 서류. 두 서명의 필체가 동일하다. (사진_성재림 기자)

원생들은 19살의 나이가 되면 덕성원에서 쫓겨났다. 안 대표는 지원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졌고, 피땀 흘려 모은 3억 원을 덕성원 일가에 되려 갈취당했다. 원장 아내 서 모 씨는 안 대표 명의로 9개의 신용카드를 개설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덕성원에서의 큰 한"이라며 "가족도 없이 사회에 내몰린 상황에서 큰돈을 뺏기니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고 고백했다.

직권조사 대신 참고인조사

지난달 1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덕성원 피해생존자 협의회'가 결성됐다. 안 대표는 "덕성원이 형제복지원처럼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 실체를 전하려 했다"며 "오기가 생겨 다른 피해생존자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 '직권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지난 22일 진화위는 피해생존자들과의 면담에서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며 "차선책으로 '참고인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안 대표는 "진화위는 과거사정리법 제22조 제3항에 명시돼 있듯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며 "진화위가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안 대표는 "피해생존자가 뻔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조사를 거부하는 행위는 상처를 두 번 주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진화위는 오는 5월 26일 활동이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1월 23일 조사기간을 1년 연장안이 최종 의결됐다. 진화위는 이를 "신청된 사건들의 진실규명을 완료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기간을 연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진화위 활동기간이 1년 늘어났음에도 '덕성원 사건 직권조사 불가'를 통보한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진화위 관계자는 "작년 전체회의에서 영화숙·재생원과 덕성원을 모두 직권조사 대상에 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기간이 1년 연장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의원들 간에 거론된 시설을 기간 내에 모두 직권조사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오갔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덕성원 사건은 굉장히 큰 비극이자 국가에 의한 중대 인권 침해가 맞다"면서도 "진화위가 한시 조직인 만큼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가 당시 자해한 흔적을 내보이고 있다.(사진_성재림 기자)
안 대표가 당시 자해한 흔적을 내보이고 있다.(사진_성재림 기자)

안 대표는 "작년에 부산시가 진화위에 공문을 보냈는데 영화숙·재생원만 직권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며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자해를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올해 부산시가 진화위에 '덕성원 직권조사'를 요청하며 보낸 공문은 총 2건이다. 부산시는 지난달 2일 16개의 진술서를 첨부한 첫 번째 공문을, 지난 13일 6개의 진술서와 함께 두 번째 공문을 전송했다.

피해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덕성원 때문에 모든 게 짓밟혔습니다. 응어리가 곪을 대로 곪아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피해자들은 여전히 한이 서려 있습니다. 국가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후속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진정 선진국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안종환 대표

한편 피해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사건의 은폐다.

"덕성원은 지금껏 묻혀버린 사건입니다. 국가에서 낱낱이 파헤쳐주길 바랍니다." -안종환 대표

"직권조사 여부를 떠나서 이 사건을 아무 의미 없이 종결시킨다면 말이 안 되는 거죠." -피해생존자 A씨

"가해자들의 만행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면 좋겠어요." -피해생존자 B씨

현재 덕성원 일가는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요양병원을 버젓이 운영하며 법인을 유지하고 있다. B씨는 "그들이 이렇게나 잘살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지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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