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예전에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었다. 전직이 교수나 군장성 또는 장관 같은 고위관료 출신이 정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자칫 '바보'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이야기인즉슨 이들은 대부분 현실 물정을 잘 모르거나 대접만 받고 살아서 사람들 섬기는 법도 잘 모르거나 서툴러서 현실 정치판에 들어오는 즉시 얼치기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당시에 이들 출신들의 정치권 진출이 활발했던 세태를 반영한 얘기이긴 하지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당연 아니고 그만큼 정치판이라는 곳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쉽게 잘 적응하기 용이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뼈 있는 유머일 터이다. 

그래서 현실 정치판에서는 해야할 것 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계가 더 많은 편이다. 자칫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나 결정이 본인이나 주변을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과거나 현재의 '설화'나 '막말'이 문제가 돼 낙마한 인사들 사례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정치권에 회자되는 또 하나의 '썰'이 있다. 정치판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없는 게 세 가지  있다는 이른바 '삼무론(三無論)'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천지가 뒤바뀌는 정치판에서 이 셋만 명심해도 '우사(愚事)'는 당하지 않는다하는 언중유골이니 이 바닥에 발 딛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길만하겠다. 

그 첫 번째가 정치판에는 "진리가 없다"는 말이다. 해석하자면 이 바닥에는 이념이나 사상, 정치적 입장에 따른 상대적인 주의나 주장만 있을 뿐이지 절대적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정치는 생물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내 생각만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터나 매한가지인 이 판에서 정보와 기밀 유지는 생명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기밀은 내 입에서 나간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 남 욕 함부로 하지마라. 한 번 새 나간 말은 모두 다 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자나깨나 입조심, 말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세 번째는 정치판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사 어느 곳에나 매한가지이겠지만 특히 이 바닥에서 이유 없는 환대는 없다. 상호주의에 기반한 호혜적 이타주의, 쉽게 말해 기브 앤 테이크가 무너지는 순간 그 후과는 부메랑이 돼 날아온다. 그러니 소화도 못할거라면 겁없이 아무것이나 덥썩덥썩 물지 말라는 말이다. 

이 셋만 명심하고 잘 지켜도 패가망신을 면하거나 적어도 망신은 면할만한 처세술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으니 각 분야의 최고전문가임을 자랑하고 여의도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라 할만한 수많은 정치인까지도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잘못이 있니 없니, 내가 옳니 그르니, 누가 나쁜 놈이니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고 있기도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쁜 놈’은 ‘나뿐인 사람’이 어원이라고 한다. 즉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 나쁜 사람, 나쁜 놈인 것이다. 아마도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우리 옛 선조들의 의식에는 공익이나 사회정의보다 개인의 이익이나 이해를 우선하는 사람을 가장 악한 사람, 나쁜 놈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쁜 놈 역시 정치권에 제일 많아 보인다. 입만 열면 공동체를 우선하고 사회정의를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이해, 자기 욕심, 개인의 출세와 권력욕, 입신양명이 가장 큰 동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 계급계층과 시민사회, 남녀노소 모두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편 가르기, 파당 짓기, 진영논리, 말 갈아타기, 기회에 편승하기, 말 바꾸기 온갖 이념과 사상을 동원해 변명을 늘어놓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나뿐인 사람이다. 공동체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정치권에 이렇게 ‘나뿐인 사람’이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선거철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과 민생은 안중에 없고 서로 상대방이 나쁜 놈이라고 네 탓만 하는 듯한 답답한 현실이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선택의 시기에 나뿐인 사람이 아닌 공공을 우선하는 정치인이 선택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렇게 근거 삼으면 일반 유권자인 우리로선 참 선택이 여의치 않다마는.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선거는 좋은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고 덜 나쁜 정치인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면 할수록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경고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명제라고.

공자는 "눈 앞에 이로움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 그 말을 잊지 않으면 성인이라 할만하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고 말했다. 특히 "나에게 이익되는 것을 눈에 보거든 옳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見利思義, 見危授命)"고 강조한다. 견리망의(見利忘義)한 세태라 하더라도 올바른 정치인이라면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치명(見危授命)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공자의 말씀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가히 시대의 사표가 될만한 훌륭한 정치인이라 칭송할만 하겠다. 고대 헬레니즘시대의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 횃불이라도 들고 저자거리로 나서야 하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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