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파괴 심각하다, 흔들리는 우리말"
언어는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여 그 민족의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말도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창조해 온 힘이 되었다. 우리가 우리말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높이 받들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언어생활을 잠시만 살펴보면 우리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 외국어 남용은 그 정도를 넘어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어, 이 시기를'우리말의 위기'시대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어른과 아이들의 말이 하도 달라서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고, 방송.신문 등 언론은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내어 속어, 외래어, 외국 문자의 남용은 말할 것도 없고, 문법.발음의 파괴가 거의 극에 달했다 할 정도로 심각하다. 실태를 점검해봤다.


언론 등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속어, 외래어 남용 심각
청소년들의 말글 환경은 학교 교육이나 고전 읽기에서보다, 인터넷을 사용하며 익힌 통신언어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 요즘 초․중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말투에서나 일기, 편지 등의 글에서 낯설고 거친 표현들을 자주 듣는다. 어느 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중등학생의 받아쓰기 능력이 10년 전에 비하여 훨씬 떨어졌다고 한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들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그곳에 우리 말글의 현실이 있다. 아이들의 성장기에 이 같은 말글 환경을 바로잡아 주지 못하면, 이제 우리 말글의 앞날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통신언어 절반 이상이 비속어
인터넷에서 쓰이는 통신언어의 절반 이상은 은어와 비속어, 또는 무질서하게 급조된 국적 불명의 말들이다. 통신언어는 규범적인 현실 공간에서의 말글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경험하려는 청소년들의 욕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의사소통 기능이 보편적이지 못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통신언어의 확산은 국민들의 실제 언어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우리 말글을 벼랑으로 내모는 데 한몫을 거들고 있다. 이미 통신언어는 세대간의 의사소통 단절까지도 염려될 정도로 특화되어 가고 있을 정도다.
말글 규범의 측면에서 보면, 통신언어 사용 실태는 가히 파격적이다. ꡐ밑에 있어요ꡑ를 ꡐ미테 이써요ꡑ처럼 받침을 뒷말에 이어 적는다든가, ꡐ되잖아ꡑ를 ꡐ되자나ꡑ로 소리나는 대로 적는 현상은 차라리 애교 섞인 규범 이탈로 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자기들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맞춤법 체계를 무너뜨린 표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가령 ꡐ아저씨, 아줌마ꡑ를 ꡐ아됴씨, 아듐마ꡑ라 하거나 ꡐ부끄럽다ꡑ를 ꡐ브꺼럽다ꡑ로, ꡐ고마워요ꡑ를 ꡐ곰아버영ꡑ 따위로 쓰는 것들이 그 보기이다. 요즘에는 한 걸음 나아가, ꡐㅋㄷㅋㄷꡑ, ꡐㅎㅎㅎꡑ들처럼 아예 초성의 낱소리 글자만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밖에, 음절을 줄여서 적는 현상도 이미 보편화한 지 오래다. ꡐ강아지ꡑ를 ꡐ강쥐ꡑ라 하거나 ꡐ미안하다ꡑ를 ꡐ먀나다ꡑ로,ꡐ남자친구ꡑ를 ꡐ남친ꡑ으로 적는 것은 물론 ꡐ선생님ꡑ을 ꡐ샘ꡑ으로, 심지어는 고유명사인 ꡐ서울ꡑ도ꡐ설ꡑ로 줄여 적고 있다.
통신언어 사용 실태를 사회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리 말글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가장 큰 문제가 비속어의 무차별적인 확산.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비어나 속어들도 통신언어에서는 더욱 진화되어 거칠고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요즘 들어서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통신언어 순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개 비어나 속어 사용을 막아 보려는 자정 노력이다.
주로 대화방에서 자주 사용되는 은어의 남용도 우리 말글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ꡐ당근이지ꡑꡐ왕따ꡑꡐ허접하다ꡑ 등은 인터넷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숙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말들에 있는 게 아니라 비속어에 가까운 은어의 남용에 있다. 가령, ꡐ거짓말하다ꡑ를 ꡐ쌩까다ꡑ라 하고, ꡐ화난다ꡑ를 ꡐ짱난다ꡑ로, ꡐ무시당하다ꡑ를ꡐ씹혔다ꡑ로, ꡐ노인ꡑ을 ꡐ노땅ꡑ으로 부르는 것들이 그러한 예이다. 언뜻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이러한 은어들이 사이버 공간 밖으로 튀어나와 청소년들의 일상어가 되다시피하고 있다.



◈인사말도 제대로 못하는 방송
이러한 사정은 방송도 마찬가지. 국민은 직․간접적으로 시청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매체를 통하여 올바른 정보와 건강하고 유익한 오락을 제공받을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방송은 온 국민이 올바른 문화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바르고 정확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말을 바르게 써야 한다는 운명적 숙제를 안고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켜면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진행자나 전문의나 할 것 없이 죄다 ꡐ피로 회복ꡑ이란 말을 ꡐ피로가 풀린다ꡑ란 의미로 쓰고 있다. 피로 회복이 뭔가. ꡐ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태를 다시 찾음ꡑ이란 뜻이다. 도대체 피로를 다시 찾겠다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 말은 ꡐ건강 회복ꡑꡐ원기 회복ꡑꡐ기력 회복ꡑ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
KBS의 김모 아나운서와 MBC의 박모 진행자는 프로그램 말미에 꼭 ꡒ건강하십시오ꡓ 혹은 ꡒ오늘 하루도 행복하십시오ꡓ라고 인사를 한다.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다. ꡐ건강하다ꡑꡐ행복하다ꡑ는 모두 형용사. 형용사는 어떤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명령형으로 쓰일 수 없다. ꡒ똑똑하십시오ꡓꡒ귀여우십시오ꡓ가 말이 되는가. ꡒ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ꡓ라고 말하는 건 숨이 차서 힘들까.
얼마 전 KBS 제2라디오 ꡐ라디오가 좋아요ꡑ라는 프로그램에 가수 이효리가 나왔다. 진행자가 물었다. ꡒ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요?ꡓ 이효리가 대답했다. ꡒ네, 그저 이번에 나온 제 앨범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밖엔 없어요.ꡓ.ꡐ바램ꡑ이 아니고ꡐ바람ꡑ이다. 방송 출연자의 99%가 틀리는 말이다. 또 KBS 1TV가 언젠가 요리 프로그램에서 ꡐ오늘의 요리-청국장ꡑ을 방송했다. 청국장은 ꡐ삶은 콩을 더운 방에서 띄워 반쯤 찧다가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만든 장ꡑ이다. 그래서 청국장은 어디까지나 재료에 불과하다. 청국장이 요리라면 간장․된장․고추장도 요리여야 한다.
MBC TV가ꡐ느낌표ꡑ에서 책과 관련한 방송을 고정으로 내보낼 때 잠시 우리나라 전역에 책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참 시원하고 반가운 바람이었는데 종종 이런 말이 들려 아쉬웠다. ꡒ책갈피까지 친절하게 끼워 두셨군요!ꡓ(김용만), ꡒ네. 책갈피가 아예 금이네요, 금!ꡓ(유재석)
책갈피는 틀린 말이다. 책갈피는 ꡐ책장과 책장 사이ꡑ를 일컫는다. 따라서 ꡐ갈피표ꡑ라 해야 옳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이 가슴을 드러내면 ꡒ갑빠가 예술이네요ꡓ하고,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ꡒ여긴 후앙도 안 트나?ꡓ라면서 명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예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ꡒ계속해서 다음 코너는…ꡓ하며 이 ꡐ구석ꡑ저ꡐ구석ꡑ을 소개한다. 왜 하필 ꡐ코너ꡑ이고 ꡐ구석ꡑ일까. ꡐ롱다리ꡑ가 판을 치고 ꡐ얼큰이ꡑ가 악을 쓰며 ꡐ몸짱ꡑ아주머니가 훌훌 벗고 나온다. 국민의 문화 선생님이 되어야 할 방송매체가 언제까지 시청자와 청취자들의 입맛만 맞추고 눈치만 볼 것인가. 국민들의 말글살이가 썩어가고 있다.

◈극장이름․영화제목 외래어
최근에는 ꡐ웰빙ꡑ이 김밥, 라면, 빗자루에까지 붙여졌다. 예전의 퓨전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니 대중문화의 꽃, 영화에 아직 웰빙이 붙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잠시 살피면, 그물에 걸린 온갖 물고기들(웰빙)처럼 알 수 없는 이름이 아주 많다. 메가박스, CGV, MMC, 스타식스, 씨네큐브, 판타지움, M파크9, 키노, 씨네씨마8, 메가씨네마, 키넥스5, 메가라인, 티파니시네마, 매직시네마, Club E0E4, 씨넥스, 팝콘하우스, AC21, 아트레온, 씨네유....
ꡐ매미ꡑ나 ꡐ민들레ꡑ라는 낱말이 태풍 이름으로 붙여진 지 손꼽아 몇 해이지만, 벌써 좋은 이름이 쓰였다는 기쁨보다 태풍이 몰고 올 수 있는 큰 상처로 새겨질 것을 염려한다. 그것은 퓨전에 관한 기억과 닮았다.
소문난 한 영화에 나온 ꡐ오라이이ꡑ와 ꡐ오라~이ꡑ라는 대사가 어린이들에게도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모든 영화에 대해 비속어․은어가 지나치다 지적하고, 영화등급위원회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 영화들이 낮은 등급 판정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분별없이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꾸 바뀌는 뜻 없는 이름들의 난장이 더 문제이다. 이것은 달콤한 빛깔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한동안 관객몰이를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고작 외래어 이름을 쓰는 것이라면, 끝이 뻔한 작업이다. ꡐ어리바리ꡑ를 알면서도 ꡐ어리버리ꡑ로 잘못 쓴 글귀가 한 문안작성자(카피라이터)의 무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대본(시나리오)에 나오는 잘못된 표현들이 작가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외국 영화 자막의 틀린 글자가 번역 실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영화의 이름이 국적을 잃은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쩌면 배우 안성기씨가 한국영화의무상영정책(스크린쿼터제도)을 마음에 두고, ꡒ영어라는 공용 언어를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할리우드와 한국어라는 소수언어를 쓰는 충무로가 자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환상이다ꡓ라고 한 말이 잘못 번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타난 우리 영화의 이름들을 보자. 한국 영화의 힘이 커졌다고 하는데, 맞는 평가인가. 이른바 방화시절부터 꾸준히 우리 영화를 아꼈던 사람들은 지금 생각이 많다. 로맨스 빠빠, 티켓, 투캅스, 런어웨이, 블랙잭, 고스트맘마, 인샬라, 본투킬, 리베라 메, 마요네즈, 닥터K, 정글스토리, 부킹 쏘나타, 알바트로스, 러브러브, 자카르타, 2002 로스트 메모리즈, H, 내추럴시티, 썸머 타임, 댄스댄스, 마들렌, ing, 튜브, 후아유, 투가이즈, 호텔 코코넛. 외래어가 붙어야 국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대중이 원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버려야할 일본어 잔재와 영어혼용체
게다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지판이 한둘이 아니다. ꡐ콘크리트 양생 중(→굳히기 중)ꡑꡐ오수 차입 관거(差入管渠→유입 파이프) 매설 공사ꡑꡐ계근(計斤→과적 단속) 불응 도주 차량 감시 초소ꡑ등이 그런 것들로, ꡐ양생, 오수 차입 관거 매설, 계근ꡑ과 같은 일본식 한자어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법령문이나 공문서도 ꡐ등기를 해태한 자(→제때에 하지 않은 사람)ꡑꡐ상환 무자력자(償還無資力者→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ꡑꡐ부동산 명도(明渡→넘겨 줌)ꡑꡐ시건(施鍵→잠금) 장치ꡑꡐ예산 지변(支弁→지급) 과목ꡑꡐ주민 소개(疏開→분산) 명령ꡑ처럼 일본식 한자어로 채워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전문 분야에서 쓰는 어려운 한자어들은 대부분 일본어 잔재인 경우가 많다.
일본어 잔재는 전문 분야만이 아니라 생활 주변 곳곳에도 남아 있다. ꡐ왔다리 갔다리(→왔다 갔다)ꡑꡐ무뎃뽀로 뗑깡부리다(→막무가내로 억지부리다)ꡑꡐ수순을 밟다(→절차를 밟다)ꡑꡐ…에 다름 아니다(→…과 같다, …과 마찬가지다)ꡑ등 일본어투 표현들이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고 있다.
우리말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일본어투뿐만이 아니다. 분별없이 쓰이는 외국어도 우리말이 바로 서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다. 한 여성 잡지에 의상과 관련하여 이런 설명이 나왔다. ꡐ잔잔한 도트 문양의 시폰 블라우스와 스커트, 블라우스 앞 중심선의 셔링 처리와 스커트의 플레어된 디테일이 로맨틱 요소로 작용한다.ꡑ
또 화장품 설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왔다. ꡐ마이크로 릴렉싱 파우더를 주 베이스로 천연 다공성 구상 분체를 배합하여 피부에 부담 없이 밀착시키며 피부가 편안히 숨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입자가 미세하여 모공을 막지 않으며 입자가 매우 부드러워 도포 시 편안한 사용감을 부여합니다.ꡑ
이런 문체의 글이 한둘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점점 늘어간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ꡐ울트라 슈퍼 메가톤급 스펙터클 무비ꡑ라는 요란한 영화 광고도 이제 그저 덤덤해진 상태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ꡐSNMP를 통한 Remote Network 관리(→간이통신망 관리 규약을 통한 원격 통신망 관리)ꡑꡐSuspend 모드에서 디바이스의 activity를 Monitor합니다ꡑ식의 제품 설명서는 국영 혼용체라는 ꡐ현대판 이두ꡑ가 되어 사용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말은 문화 창조의 힘있는 도구로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무관심으로 우리말은 점점 위축되어 간다. ꡐ포털 사이트(→종합정보사이트)ꡑꡐ엔지오(NGO→비정부기구)ꡑꡐ시이오(CEO→최고경영자)ꡑꡐ시너지(→상승) 효과ꡑ 등은 대부분 방송이나 신문에서 거르지 않고 씀으로써 확산된 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 지식과 외국어 능력을 활용하여 새 문물에 대한 용어를 그때그때 번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계, 산업계, 언론계는 외국어 용어를 차용하는 데 길들여진 타성에서 벗어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반 국민이 쉽게 알 수 있는 용어를 찾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새 말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초등생 언어예절교육 강화 절실
ꡐ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ꡑ는 속담이 있다. 어려서 익힌 태도와 습관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고치기 힘들다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나쁜 버릇이 들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남의 말을 어떤 태도로 듣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사람됨을 평가할 수 있다. 말은 사람의 됨됨이, 즉 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보여 주고 나아가 한 사회의 교양 및 문화 수준을 나타내 준다.
지하철, 버스, 공원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그것도 듣기에 민망한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대화를 주고받는 아이들을 마주칠 때가 비일비재하다. 비어, 속어, 격하고 거친 표현을 주저 없이 씀으로써 그들만의 동류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어린이, 청소년들의 대화에 ꡐ매우ꡑꡐ아주ꡑꡐ굉장히ꡑ의 뜻으로 ꡐ졸라ꡑ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ꡐ졸라맨ꡑ과 같이 어린이 비디오나 만화의 주인공 이름에도 쓰이고, ꡐ졸라맨 ○○ 공포ꡑꡐ바람을 가르는 졸라 ○○○ꡑ등과 같이 아동용 도서의 제목에도 버젓이 쓰이고 있다.
ꡐ졸라ꡑ는 ꡐ남성의 성기ꡑ를 뜻하는 말과 ꡐ나게(←나다)ꡑ가 결합하여 변화된 것으로 매우 듣기 거북한 말이다. ꡐ시벌, 시펄, 스벌, 개에쉑…ꡑ등과 같은 온갖 비어, 속어가 어법이 깨진 채 각종 스포츠 신문에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대학 교정의 상황은 어떤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투가 한갓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던, 한 회의에서 만난 유명 사립대 교수의 개탄! 이쯤 되면 우리 국어교육은 근본부터 재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초등 국어교육의 목표는 크게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어 활동을 통해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상황에 맞는 올바른 태도와 말씨로 의사소통을 하여 올바른 국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두 번째이다. 사고력과 언어 능력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시기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국어교육은 제 생각을 표현하고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활동을 통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바르고 고운, 상황과 어법에 맞는 말을 사용하는 버릇을 몸에 익히는 것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원만한 대인 관계, 사회생활, 과업 수행을 위해서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함부로 얘기하여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역시 초등 국어교육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ꡐ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ꡑꡐ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ꡑ는 말은 바로 태도 교육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육은 그 중요성에 비추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보통 아이들은 듣는 사람, 듣는 태도, 말하는 태도, 말하는 상황, 말투, 말하는 장소 등을 가려서 말하고 듣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마 이런 요소들은 ꡐ일류ꡑ대학을 들어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앞선 세대들은 언어 예절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르쳤다. 세살 버릇이 평생을 가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황에 맞게 어휘나 표현을 가려서 쓰게 했다. 또 어떤 말씨를 어떤 태도로 써야 듣는 사람에게 정중하고 격식에 맞는지를 가르치고 이를 행하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말글은 물론 국어 문화를 바로 세우는 길이 아닐까?


中.日"한글배우자"열풍
정부 지원책은 미흡

ꡐ수요는 늘고, 공급은 부족하고ꡑ한류 열기 등으로 한글 배우기 붐이 일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현주소다. 열악한 현지 실태를 점검해본다.
◇일본=드라마 겨울연가로 촉발된 한류붐을 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강좌수도 적고, 교습법도 구태의연하다. 이 때문에 한류열기붐을 한국붐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과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현재 일본 내에서 한글을 배우려 하거나 배우고 있는 사람은 100만 명에 이른다. NHK방송의 한글 강좌만 30만 명이 시청하고 있고,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고교도 219개(2003년 말 현재)에 달한다. 또 도쿄에만 200여 개 사설 교습 기관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의 한국어 강좌는 크게 ▲한국 정부 ▲재일동포 사회 ▲사설 학원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정부 주관의 경우 교육부가 일본내의 한국학교 4곳과 교육원 19곳에서 한글학교를 개설하고 있고, 문화관광부가 별도로 문화원에 한글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주일문화원이 올 초 모집한 초급 한글 강좌에는 90여명이 수강을 신청했지만 시설이 부족해 30명만 입학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ꡒ최근 3년간 일본에 할당되는 교육예산이 30%나 줄어든 상황이어서 한글 교육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실정ꡓ이라고 말했다.
대사관과 문화원은 이 때문에 지난 8, 9월 사설어학원 강사를 대상으로 한글 강습회를 열어 한글 교습법을 간접 지도하기도 했다. 교재 역시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어서 외국에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어와 북한어가 혼용되는 일본만의 특수 사정도 고민거리다. 일본의 한국어 검정 시험은 한국정부가 주관하는 ꡐ한국어능력시험ꡑ과 총련계 비영리단체(NPO) 단체에서 시행하는 ꡐ한글능력검정시험ꡑ등 두 종류가 있다. 지난해 응시자는 각각 6,000여명과 1만2,000여 명으로 후자(後者)가 월등히 많았다. 주일 문화원 관계자는 ꡒ남북이 화합하는 방안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ꡓ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국=지난 6월19일, 중국 베이징 세기극장. 주중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 개원 10주년 기념 공연 행사가 열렸다. 당시 10여명의 참가자들은 유창한 한국말로 웅변을 하거나 보아와 이정현의 노래를 한국사람 뺨치게 불러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참가자들은 모두 문화홍보원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어강좌 연수자들이었다.
현재 문화홍보원은 베이징 현대빌딩 5층에서 초급반 3개와 중․고급반 등 5개 반의 한국어강좌를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고 있다. 한류 덕분에 올 들어 지난 8월말 현재 2,600명이 수강을 마쳐 이미 2003년 한해 수강자 기록(2,500여명)을 넘어섰다. 수강 신청 때면 접수 2시간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강생들은 10~20대를 중심으로 한류에 관심이 많은 학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언론인,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60대 할아버지도 끼어 있다. 대학생인 쉬리리(21)는 ꡒ가수 보아의 팬ꡓ이라며ꡒ한국의 노래나 영화, TV드라마를 좀더 익히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ꡓ고 말했다. 문화홍보원이 베이징에 살지 않거나 직접 오기 어려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2002년 4월 시작한 인터넷 한국어 강좌(http://study.hanguo.org)의 인기도 만만찮다. 회원수는 현재 6만5,000명에 이른다.
그렇지만 여건은 좋지 못하다. 예산 부족으로 초급반의 경우 교실마다 수강생이 200명 이상이나 된다. 위계출 문화홍보원장은 ꡒ한국어 강좌가 중국 한류를 이끄는 선도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ꡓ며 ꡒ앞으로 인터넷 서버 용량을 늘려 사이버 강좌를 강화하겠다ꡓ고 말했다.
한편 중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교포들은 베이징한국학교가 주말마다 운영하는 한글교실과 학원로교회가 운영하는 주말한글교실 등을 찾고 있다.


"우리 글 간판이 장사 잘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용어는 우리말, 한자, 영어, 일본말 등 네 가지이지만, 20세기만 해도 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 공용어 중에서 삼국 시대부터 써 온 한자의 역사가 제일 길다. 15세기에 와서야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며 국어가 처음 나타나고, 19세기말에 ꡐ국어부흥 운동ꡑ이 일어난다. 이어서 영어와 함께 일본어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이 시기 공용 문자는 한자를 포함한 일본글이었지만, 또한 국한문 혼용으로도 썼다. 현재는 영어는 초, 중, 등, 대학을 지나 각종 기업체 입사에 필수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즉, 영어는 돈과 출세, 권력, 명예로 이어지는 조직적 연장이자 관문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조기영어교육은 물론이고, 영어 능력 시험이 의무 시험이 되고, 거기에 대학 재학 중엔 어학 연수를 가는 것이 바람을 넘어 관례로 굳어진 듯 하다.

■잘 지어진 한글 간판 매출로 이어진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공용어가 바뀌고 있는 가운데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결과 간판을 우리말로 바꾼 경우 영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는 영업주들은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조사 결과다. 물론 업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간판을 우리말로 바꿔 달았을 경우 영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결과 56%가 간판을 우리말로 교체해서 매출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반면 외래어로 바꾼 후 성공한 매출 성장을 보였다는 의견도 40% 정도로 나타났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로 나타났다.
사업주들이 외래어 상호를 선호하는 것은 이런 상호가 영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는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어의 간판 수치는 근래 들어 급격히 늘어난 국적불명의 합성어의 증가에서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헤어 환타지, 만화cafe, 북 토피아 등으로 인터넷 사이트들의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간판=매출이다
잘 지은 우리말 간판도 늘고 있는 실정이며, 어쩐지 정감이 가며, 담백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소비자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몸에존집(기능성 식품점), 웃음꼬치 구이점(꼬치 구이점), 가위소리(미장원), 코스닭(통닭집), 반지랑 핀이랑(장신구), 먹을래 사갈래(식당), 주주총회(술집), 등이 대표적이며 철면피(철판구이), 지지고 볶고(미용실), 버르장머리(이발소), 커피 위에 뿌려진 노란 햇살(음료), 나비야 청산가자, 달아 달아 밝은 달아(주점) 등 문장이나 구, 절 형태의 간판이 많아졌다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다.
소비자들이 간판의 글(文字)에 대한 취향이 바뀌면서 간판=매출이라는 개념이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어 우리 글이 더욱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간판은 우리 글로 된 간판을 거꾸로 매달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도 눈에 띄어 간판에 대한 문자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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