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IMF이후 사상 최다 급증세
보호시설 입소 노숙자는 감소하고 거리노숙자는 늘어
20대, 여성노숙자들도 증가…보호대책은 턱없이 부족

서울시내 거리의 노숙자의 수가 700여명이라는 사상 최대치에 육박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거리의 노숙자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쉼터 등의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노숙자의 수는 오히려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인데 통제와 신분노출을 꺼린 노숙자들이 쉼터 대신 거리를 택한 것이다. 이렇게 거리 노숙자가 급증세를 보이자 서울시는 지난달 15일부터 겨울철 노숙자 보호대책에 나섰고, 김근태 복지부 장관의 노숙자체험을 하기로 해서 그 대책마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MF이후 사상 최대치에 이르고 있는 노숙자 문제와 대책을 고민해본다.


사상 최대 거리노숙자
서울시내 거리의 노숙자들이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겨울 노숙자 보호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현재 거리 노숙자는 73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41명, 2002년 436명에 비해 대폭 늘었다. 연도별 평균치를 보더라도 올해 10월말까지 평균 노숙자수는 621명으로 지난해 484명, 2002년 411명, 2001년 389명, 2000년 359명, 1999년 322명에 비해 최대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반면 보호시설에 입소한 노숙자 비율은 1999년 91%, 2000년 90%, 2001년 88%, 2 002년 86%, 지난해 83%에 비해 올해 78%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술을 자주 먹거나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보호시설의 단체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쉼터에 가면 신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들이 입소를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겨울철이 되면 일용직 시장의 일감이 줄어 쪽방,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지방 소도시의 노숙자들이 서울지역으로 유입되는 것도 거리노숙자가 늘어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노숙자가 급증세를 보임에 따라 시는 지난달 15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를 겨울철 노숙인 특별보호기간으로 설정하고 서울역, 영등포역, 시청주변, 을지로 등에 자원봉사자와 상담원 105명을 투입해 거리 노숙자에게 쉼터입소 등을 안내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순찰활동을 한다. 시는 또 술을 마셔 보호시설에 입소하기 곤란한 노숙자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응급보호방 4곳을 설치하고, 여성과 가족 노숙자 등 쉼터입소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쪽방을 지원한다.
시는 이와 함께 노숙자들이 하루 쉬면서 빨래와 샤워를 할 수 있는 상담보호(Drop In)센터 1곳을 서울역 주변에 추가로 설치하고, 은평구 응암동에 120평규모로 여성노숙자나 가족노숙자를 위한 시설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역 노숙인들의 하루살이
갖가지 사연으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 노숙자 문제. 현실성 있는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예년에 비해 더욱 추울 것이라는 올 겨울 날씨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노숙자들의 겨울나기는 어떤 모습인지 거리로 나가봤다.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기라도 하듯 체감온도가 영하권까지 큰 폭으로 떨어진 지난달 16일 오후 3시. 노숙자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진 서울역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노숙자들은 “다가오는 겨울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거리 노숙을 했던 쉼터 입소자들도 “겨울철 대책이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노숙자들이 밤을 지내는 곳인 서울역 인근은 길바닥이야 어느 곳이든 얼음장같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추위를 피할 만한 특별한 방법이 없는 이상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 지하도나 대합실을 이용해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고, 노숙자들이 집중돼 있어 상대적으로 제약이나 규제가 덜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급식소 끼니 해결, 행인에게 구걸도한 낮임에도 광장에는 따뜻한 햇볕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든 노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림 잡아 60여명 남짓. 군데군데 술판이 벌어지고 간간이 몸싸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울역 경비업무를 맡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하루 종일 술판 벌이는 노숙자들이 많다”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돈을 주면 바로 편의점으로 가 술을 사곤 한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광장에 있던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향했다. 움직일 힘이 없어 보이는 노숙자 몇몇은 그대로 웅크리고 누워있다. 바삐 걸어가는 한 노숙자에게 행선지를 묻자 “저녁 밥 먹을 때가 됐다”면서 “같이 갈려면 따라 오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 간 곳은 염창동 근처의 무료 급식소. 한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이곳에는 벌써 30여명의 노숙자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랜 노숙생활에 찌든 사람들은 이곳까지 오는 것도 힘들어서인지 거의 없었고, 비교적 깔끔한 차림의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하나둘씩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해가 완전히 걷히자 서울역에는 낮 시간보다 노숙자의 수가 많아졌다. 광장에만 1백여 명 남짓. 지하도와 서울역 구내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2백여 명은 넘어 보였다.


여성노숙자도 점점 증가 추세
그런가 하면 최근들어서는 여성 노숙자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영등포역 등에서 남자 노숙자들과 뒤섞여 생활한다. 영등포역 바로 옆에 위치한 역전파출소에 따르면 영등포역 주변에서 노숙하고 있는 여성들은 40~50명. 젊은 여성 노숙자들의 경우 돈이 생기면 영등포역 주변의 쪽방에 머물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노숙을 하는 ‘반노숙' 형태가 많다. 그래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다.
여성 노숙자들이 증가한 사실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6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유필우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2003~2004 노숙자 현황’ 자료에도 잘 나타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전국 각지의 노숙자 쉼터에서 집계된 여성 노숙자 수는 모두 233명. 이는 지난해의 178명에 비해 31%나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여성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은 아직 부족하다. 남성 노숙자들의 경우 노숙생활이 싫으면 ‘쉼터’를 찾아가 자활과 자립을 꿈꿀 수 있다. 쉼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오더라도 ‘드롭인(drop-in)’센터를 이용하면 숙박이나 세탁, 목욕 등 기초적인 생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여성들을 위한 쉼터는 일단 유형별로 그다지 세분돼 있지 않다. 드롭인 센터는 아예 없다.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 거리지원팀의 김해수씨는 “여성 노숙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도 차등화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남성에 비해 소수이다보니 지원 순위에서 밀린다”고 전했다.
여성 노숙자들 본인이 쉼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입-퇴소를 반복하는 것도 쉼터 관계자들의 고민이다. 9월 9일 밤 서울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자 이모씨(30)는 "쉼터가 생활하기에 더 낫지 않으냐"는 질문에 "때리는 사람도 없고 여기가 편해"라며 연방 손사래를 쳤다. 이씨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금세 도로 나와버렸다"고 말했다.

◈20代 노숙자도 쏟아진다
그런가 하면 20대 노숙자도 늘고 있다. "직장이요? 갖고는 싶지만 이 생활에 너무 젖어버려 이제는 일할 자신도 없어요" 거리의 네온사인이 제법 밝아진 지난달 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뒤편 어두운 골목안 노숙인 쉼터에서 만난 박모(27)씨는 서둘러 영등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군 제대후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떼인 이후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씨의 유일한 낙은 영등포역과 그 인근을 돌아다니는 것. 김씨는 오후 늦게 일어나 점심겸 저녁을 먹은 후 밤새 영등포역에서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에야 다시 쉼터로 향하는 생활을 1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장기 불황 속에 직업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들이 최근 스스로 쉼터를 찾는 등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밤 8시30분 'e-열린공동체'의 거리배식이 진행된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앞. 400여명의 노숙인들이 저녁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줄을 늘어선 가운데 머리에 염색을 한 20대 노숙인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비교적 깨끗한 차림이었지만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재빨리 밥을 먹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실제로 서울역 노숙인상담소의 경우 9월 상담 노숙인 25명중 20대는 1명(4%)에 불과했지만 10월 들어서는 51명중 8명(16%)으로 증가했다. 영등포역 상담소도 9월엔 43명 중 2명(5%)이었으나 10월 들어서는 26명 중 3명(12%)을 차지했다. 노숙인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20대 노숙자들이 대략 1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지부, 동절기 노숙인 집중상담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동절기를 앞두고 대도시 지역의 거리노숙인 및 여성노숙인 등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11월 중순께 노숙인이 많이 있는 서울역 등 주변에서 거리노숙인을 위한 집중상담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자와 가정불화 등의 사유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거리노숙인 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인데,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그 동안 IMF체제 이후 전체 노숙인은 6000여명 수준에서 2004년 9월말 기준 4300여명으로 점차 감소추세인 반면, 거리노숙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증가해 현재 1130여명이다.
그 동안 정부는 노숙인들을 103개 쉼터에 3160명을 입소(9월말 기준)시켜 숙식, 의료서비스 제공, 알콜 재활 등의 재활 및 직업자활 등의 자활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여성노숙인과 아이가 딸린 여성가족 노숙인을 위해서는 10개소의 여성 및 여성가족쉼터(정원 371명)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또한 거리노숙인에 대한 상담과 목욕, 세탁 등의 생활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거리노숙인이 많은 대도시 지역 중 서울 3개소, 부산, 대구, 대전에 각각 1개소의 전국상담보호센터 6개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울역 부근 상담보호센터 내에 여성거리노숙인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 이들이 목욕, 세탁 등 생활상의 편의시설을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거리노숙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무료진료소 4개소에 공중보건의사를 배치,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동절기 일제상담기간 동안 상담보호센터, 쉼터, 쪽방상담소, 부랑인복지시설 및 관련단체, 서울시 등과 공동으로 거리노숙인들에 대한 초기 밀착상담을 강화해 이들을 쉼터 및 적정시설로 입소시켜 보호할 수 있도록 동절기 거리노숙인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스1
제목:성범죄 표적 ‘여성노숙자’
부제:범죄 사각지대의 여성노숙자 ‘갈곳이 없다’
어떤 노숙인들에게 있어서 노숙의 공간은 또 다른 종류의 위험이자 전쟁터다. 바로, 노숙인 여성들에게 그러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거리 곳곳에 산재한 물리적, 심리적 폭력과 성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노숙인 여성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숙인 남성처럼 자신을 비교적 쉽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거리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 노숙인 여성들은 문자 그대로 '최극한'에 놓여있어서 더 이상 지킬 것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얼마 전 한 조사에 따르면 노숙자, 특히 여성노숙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의 끝이 보이질 않고 있는 요즘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숙자들의 끝이 어디일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높다.

◈각종 성 관련 범죄 위험에 노출
하루가 다르게 노숙자가 늘어나면서 노숙자가 대상이 되는 각종 범죄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숙자들을 강제로 감금하고 이들의 신분증으로 카드와 핸드폰을 불법 발급 받은 사건도 있었다. 특히 소수에 속하는 여성 노숙자의 경우 성범죄까지 겹쳐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국 각지의 노숙자 쉼터에서 집계된 여성 노숙자 수는 2백33명으로 지난해 1백78명에 비해 31%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소수에 속하는 여성 노숙자들의 경우 다수를 차지하는 노숙 남성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성폭력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고 생계형 성 매매의 유혹도 적지 않다. 대개 여성 노숙자는 술집, 다방, 식당 등 집이 아닌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하는 여성도 잠재적인 노숙자로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수치로 나타난 여성 노숙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성 노숙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노숙자들끼리 동거생활을 하며 아이를 낳았다가 아이가 죽자 영아사체를 유기했다가 붙잡힌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여성들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이유는 '돈'때문도 있지만 가정의 폭력 때문도 상당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2년 발표한 '노숙자 자활지원체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홈리스화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가정폭력(37%)과 가정불화(24.7%)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이나 정신지체로 버려진 여성들이 노숙인으로 전락했다면 최근에는 가정폭력이나 불화를 견디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온 여성노숙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남자노숙자들 접근 흥정벌이기도
상식적으로 봐도 여성 노숙자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보니 여성 노숙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욕해결 뒷 얘기가 공공연한 소문으로 떠돌기도 한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여자든 남자든 며칠만 밖에서 잠을 자게 되면 모든 이성이 마비된다”며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여자들 중 몸을 팔아 용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는 걸 대부분 알기 때문에 밤이 되면 욕정을 참지 못한 노숙자들이 접근해 흥정을 벌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선진국에도 대도시에는 구걸을 하거나 벤치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미국만 해도 노숙자가 3백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불황이 지속되면서 노숙자를 돌보기는커녕 나부터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라고 허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숙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한 노숙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지극히 정상이었던 사람도 노숙생활을 며칠만 하면 삶의 의지가 무기력해져 ‘놀고 먹는 노숙자’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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