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비대화 ‘큰 정부’ 지향하나
정부의 39개 부처와 기관이 내년에 국가공무원을 6만3480명 늘려 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행자부가 이를 선별하고 또 기획예산처가 여과할 경우 그만큼 공무원 수효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증원 요청을 보면 현 정부의 조직 확대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 것인지, 또 국민의 신뢰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알기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대정권에 비해 크게 조직 비대화…공무원수도 대폭 증가
회의 개최실적 전무한 각종 위원회도 수두룩 ‘위원회 홍수’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들어 정부 조직은 크게 비대화했다. 위로는 청와대로부터 9급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면적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무려 2만6110명이 늘었으니 문자 그대로 국민의 참여속도를 실감케 한다. 국가공무원 수는 2002년 말 17부 2처 16청의 56만2373명에서 올 10월 말 현재 18부 4처 17청의 58만8482명(교원 포함, 군인 지방공무원 제외)으로 늘어났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몸집을 줄이려 칼바람이 몰아치는 민간 부문과는 대조적이다.
우선 가장 고위직인 장차관급의 증가가 눈에 띈다. 참여정부의 장차관급은 모두 116개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장차관급 101개를 89개로 대폭 줄인 것과 비교하면 그 동안 꼭 30%가 증가한 셈이다.

◇청와대 인원증가 단연 으뜸

증가율이 이보다 높은 곳은 가장 힘이 세다고 할 수 있는 청와대다. 장차관급이 2명씩 늘고 8개 비서관실을 신설함으로써 전체 청와대 직원은 97년 외환위기 당시의 377명에서 498명으로 증가했다. 물론 하위직 공무원도 5급이상 1500여명, 9급만도 4000여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앞으로 공직자비리조사처가 신설되고 공공 부문 비정규직 23만명 중 우선 3만여명이 정규직으로 바뀌면 ‘국민의 공복’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의 비대화가 왜 나쁜가. 그것은 우선국민 혈세의 낭비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납세자들은 쪼들릴 대로 쪼들리는데 늘어난 공무원들에게 봉급을 줘야 한다. 점심시간에 민원을 받지 않는다고 월급을 안 줄 수도 없다. 연금도 계속 늘어난다.
신분보장을 받은 철밥통 소리를 들으며 최근에는 노조를 만들어 단체파업까지 하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해악은 규제의 양산이다. 관료사회가 거대한 이익집단이 돼 스스로 덩치를 키우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려는 관성의 결과다. 공무원의 수는 일의 양에 관계없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늘어난다는 ‘파킨슨의 법칙’그대로다. 세계적 추세에 역행할 뿐 아니라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해온 역대 정부의 기치와도 어긋남은 물론이다. 시장보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적 속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99년 1월 규제건수는 모두 1만362건. 당시 김대중 정부는 규제개혁을 내걸고 이를 대폭 축소, 2년 뒤 6910건으로 줄여놓았다. 그러나 공무원 수의 증가에 비례해 규제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 10월 현재 규제건수 8700건에 이르러 정부가 개입과 통제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

거기에 대통령 소속 각종 위원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 소속 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가 홍수를 이루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부실위원회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국회로 가는 정거장이라는 혹평도 쏟아졌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산하 각종 자문위원회를 무려 9개나 신설, 모두 22개로 늘렸고 자문위원 수는 전 정부 말기의 334명에서 568명으로 증가했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라며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의 날을 곧추 세웠다. 최 의원은 이정우 정책기회위원회 위원장을 향해 “이 위원장이 관장하는 위원회가 몇 개인가”라고 묻고 “위원장들이 모두 장관급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위원회는 모두 12개이며 장관급”이라도 답변했다. 그러자 최 의원은 “중앙 부처 장관이 몇 명인데 위원회 장관이 12명이나 되느냐”며 비판하고 “참여정부들어 위원회가 홍수를 이루며 장관급이 너무 많이 늘어난 것도 큰 문제지만 위원회 소속 자문위원들도 문제”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내가 파악한 위원회 소속 자문위원만 642명에 달하며 정밀하게 알아보면 1000명은 더 넘을 것”이라며 강조했다. 최 의원은 이어 “위원회가 남발되다보니 정부가 정책을 가져가면 유턴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참여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은 하지 못하고 로드맵만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위원회는 로드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100대 과제 가운데 3분의 1을 실행하고 있다”며 최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의원은 이와함께 “이 위원장은 최근 강연에서 콜금리 인하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나”라며 위원회 기능의 폐단을 물고 늘어졌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그런 말은 전혀 한 적이 없다. 언론이 과잉보도한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최의원은 또 위원회 출신 일부 정치인, 청와대 직원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위원회가 청와대, 정부로 진출하는 정거장인가”라고 꼬집었다.



◇11개 위원회는 회의 개최 전무
한나라당 김애실 의원은 재경부와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산하의 각종 위원회에 대한 문제점을 끄집어냈다. 김의원은 “재경부에는 지난 6월말 현재 24개 위원회가 있다”고 말하고 “이 가운데 17개 위원회는 법률에 의해, 나머지 7개위원회는 대통령령에 근거해 설치되었는데 경제자유구역위,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 정보공개심의회, 아시아개발은행(ADB)연차총회준비위등 4개는 현 정부 출범이후 신설됐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는 반영된 예산이 없는데도 예산을 집행했고 정부소유 주식매각 가격산정 자문위는 예산이 있는데도 전혀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점을 열거했다. 또 “올 6월말까지 24개 위원회 가운데 13개 위원회만 1회 이상의 회의를 개최했고 나머지 11개 위원회는 회의 개최 실적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재경부와 산하 4개청에 속한 위원회 수만 54개에 달하고 현 정부 출범이후 신설된 위원회만 최소 10개인데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며 정비를 촉구했다.

◇총리실산하 위원회 ‘개점휴업’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수십개의 위원회가 1년에 회의 한번 열지 않는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조정실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전병헌(田炳憲) 의원에게 제출한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 개최실적 현황’에 따르면 총리실 산하 위원회는 총리가 직접 위원장을 맡고 있는 41개와 국무조정실장이 위원장인 18개 등 모두 59개.
이 가운데 올해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은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지방이양추진위원회와 재외동포정책위원회 정보통신기반보호위원회 청소년육성위원회 기후변화협약대책위원회 등 31개로 전체 위원회의 52%에 이른다. 올해 설치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와 제대군인지원위원회도 구성된 후 단 한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또 2001년 이후 4년 동안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은 위원회도 11개나 돼 위원회의 존재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 의원은 주장했다.
올해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한 위원회는 17개였으며 2회는 5개, 3회 이상 개최한 위원회는 6개에 불과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12회로 가장 많았고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7회로 두 번째였다. 특히 재외동포정책위원회는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재외국민 테러 위험 증대, 재외동포 선거권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이 잇따르는데도 불구하고 1998년 이후 단 한번도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전 의원은 “‘위원회 공화국’ 또는 ‘전시행정’이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운영 및 관리가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몇 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하루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盧대통령 “일만 잘하면 그만 강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국가경쟁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참여정부에 위원회가 많다는 비난이 있고 위원회 공화국이라고도 한다”면서 “엉겹결에 ‘왜 위원회 공화국이냐’ 고 방어하는데, 맞다. 위원회공화국이라고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부처의 벽을 허물고 통합적 정책을 만들기 위해 위원회가 꼭 필요하다”며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
노 대통령은 또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신뢰받지 못하는 국가 기관은 일을 할 수 없다”면서 “국가 전체가 국민에게 신뢰받기 위한 결단과 의식을 치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국정원 외에도 군 검찰 경찰 등 과거 정권에서 공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의혹이 있는 국가 기관들도 과거사 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가기관이 불법이 아닌 범위안에서 적극적으로 밝히고 역사를 정리해야 할 것”이라면서 “결심을 하고서도 유야무야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고 다시 권위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만큼 내 임기가 많이 남았으니 장애가 없도록 확고하게 받쳐드리고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은 김대중 전 대 통령 시절에 조사해서 제 시기에 마무리했다”면서 “국가를 대표해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것이 제주도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교통부 99% 감량
이제 우리는 정부개혁을 확실하게 성공시킨 영국이나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을 벤치마킹해야한다. 현재 뉴질랜드 정부의 교통부 직원은 45명에 불과하다. 87년에 4200명이던 것을 99% 감축시킨 것이다. 정책입안 기능을 제외하곤 민간에 이양한 결과다. 총무처 직원은 85년 827명에서 144명으로 줄었다.
87년 50여개 중앙부처 조직을 통폐합, 8만5000명의 공무원을 3만5000명으로 감축했다. 지난 87년까지 후진국이던 아일랜드가 91년 3만1000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 국가로 된 것은 뼈를 깎는 개혁의 결과다. 일본도 5년에 걸쳐 1부(府) 22성청(省廳)을 1부 12성청으로 줄였다. 대처 총리가 주도한 영국의 개혁을 거론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진정한 개혁은 정부 자신의 뼈를 깎아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박스1
제목:역대정권의 구호로 끝난 ‘작은 정부’
부제:집권직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
집권후반기에 이르면 더 비대해지기 일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들은 집권 직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며 하나같이 조직축소를 서두르지만 집권후반기에 이르면 더 비대해지기 일쑤였다. 정부는 지난 48년 수립 이후 대략 50회 정도 조직개혁을 단행했다. 1년에 한번꼴로 정부의 틀이 바뀐 셈이다.
5공화국 초기인 1981년 10월 전두환 정권은 “10.15 행정개혁”을 통해 국무총리소속의 기획조정실과 행정개혁위원회 등 여러기구를 폐지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축소작업을 추진했다. 특히 차관보, 부기관장 등 보조조직을 없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앙정부의 기구는 “2원15부4처4청4외국” 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곧이어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에 대비해 체육부를 신설했고, 국정자문위원회 등도 만들었다. 결국 87년엔 정권초기 보다 “1부9청”이 오히려 늘어난 2원16부4처13청3외국이 됐다.
6공화국 들어서도 행정개혁위원회를 설치, 군살빼기에 나섰지만 집권5년간 공무원수는 16만여명, 정부조직도 “2처2청”이 늘어났다.
김영삼 정부때도 상황은 마찬가지 였다. 출범초기에는 “작고 강력한 정부”를 외치면서 2부1처1청을 폐지했다. 공무원도 1천4백여명을 잘랐다. 하지만 96년 해양수산부를 발족한데 이어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환경부 등의 조직을 대폭 확대개편했다.
김대중 정부도 ‘작은 정부’라는 구호와는 달리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옥상옥(屋上屋)의 ‘위원회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었다. 지난 9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98년 2월 부총리제와 공보처를 폐지하고 내무부와 총무처를 행정자치부로 통합하는 등 17부 2처 16청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1년여만인 99년 5월 공보처가 국정홍보처로 부활하고 문화재청, 중앙인사위원회, 기획예산처가 신설되면서 국무위원수는 17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2000년말에는 경제부총리 및 교육부총리가 신설되고 여성특별위원회가 여성부로 승격하는 등 작은 정부의 구호를 슬그머니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공무원수도 마찬가지다. 97년 93만5천명을 정점으로 정권말기를 틈타각 부처가 정원을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2002년 6월말 정원은 88만2천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또한 양산해낸 또다른 조직으로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도 노사정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 김대중 정권시절 신설된 기구들은 ‘민․관 협의를 통한 행정효율 제고’라는 출범 취지와 달리 주5일근무, 부실기업매각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민관 이견 조율은커녕 갈등을 증폭시킨 경우가 적지않아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이 점증하면서 각종 정부위원회는 98년 3백72개에서 2002년 3백63개로 9개가 줄었지만 명패만 내건 위원회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의 비대화 문제가 지적되고 한바탕 조직 축소열풍이 몰아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위장개혁’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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