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대권 대망론 '고건 신드롬'
'가장 호감이 가는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
최고의 자산이자 강력한 무기는 '관리능력'

최근 차기 주자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인사들이 뒷줄로 밀리고 있는 반면 고건 전 총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이 눈에 띄고 있다. 여권의 차기 주자인 정동영, 김근태 장관과 이해찬 총리는 각각 하위권을 차지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1등은 고건 전 총리(22.0%)가 차지했고, 정동영(7.9%) 김근태(3.1%) 장관은 고 전 총리에게 지지율이 한참 뒤처진 3위와 6위에 그쳤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대권 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에 대해 집중취재했다.



정치권 최대 변수 '고건 카드'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차기 대권주자'로 잇따라 선정되면서 시선을 끌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 95% 3.1%) 결과 차기 주자군에 대한 호감도 면에서 26%의 지지를 얻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22.9%)와 열린우리 당의 선두주자격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15.7%)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호남 출신인 고 전 총리는 특히 수도권과 호남, 30~40대에서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성향을 좌우하는 변수인 지역 및 세대와 무관하게 고루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앞서 지난해 9월14일 한겨레21, 10월6일 경향신문, 11월16일 국민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호감도 1위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5월 총리직에서 사퇴한 뒤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온 고 전 총리가 지지율 1위 행진을 거듭하자, 이에 반신반의해온 여야 정치권에선 그 원인을 분석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고 전 총리의 인기가 여권의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데 대해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국 '거품 현상'에 그칠 것이 라는 전망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전북 전주가 지역구인 우리당 장영달(張永達) 의원은 "무작정 과거의 대한 동경과 안정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며 "우리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진전돼 나가면 백지처럼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도 "현정권이 386정권이라고 하고 사회전체가 불안하니까 대통령 탄핵시 권한대행으로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고 전 총리의 인기가 올라간 것"이라며 "그러나 자신은 물론 두 아들이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검증 대상에 오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여야 모두 확실한 차기가 없다는 점에서 '고건 카드'는 향후 각 당의 당권경쟁은 물론 정계개편의 뇌관으로 작용 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건의 최고 상품성은 뛰어난 관리능력
두차례의 서울시장 경력 말고도 고건 시장의 이력서를 보노라면 한마디로 현란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에 합격, 이듬해 내무부 수습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40여년 동안 세차례의 장관을 역임한 것을 비롯해 1997년 30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공직자로서 거칠 수 있는 자리는 다 거쳤다. 또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최연소 전남도지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등도 고건 시장의 이름을 빛내는 공직 경력들이다.
고려대 김영평 교수는 "전환시대의 행정가-한국형 지도자론"이란 책에서 고건 시장을 두고 '귄위주의 시대의 반권위주의 행정가'라고 규정짓고 있다. 고건이 권위주의 시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상할 정도로 권위주의를 지도했던 집권자들에게 발탁돼 시대의 각광을 받았다.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반권위주의적 지도력을 보여주었던 그의 인물됨이 더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새 자리를 맡을 때마다 관리능력에 관한 한 구성원들로부터 하나같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한데 1991년 고려대 박종민 교수가 3~7급 직업관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설문 내용은 '귀 부처의 전직 장관(청장․시장)들 가운데 누구를 이상적인 장관으로 생각하는가. 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부(1981년 제9대 장관 역임) 직원들은 '1. 일관성과 원칙 견지 2. 인사에서 원칙 충실 3. 자기관리 철저'를 들었다. 또 교통부(1980년 제27대 장관 역임) 직원들은 '1. 창조력 2. 부하사랑 3. 외부 압력으로부터 조직성원 보호'라고 응답했다. 고건 시장과 한번이라도 일을 같이 했던 공무원들이라면 이와 관련한 한두가지 일화를 꺼내면서 두 부처 직원들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만일 고건 시장이 대권경쟁에 뛰어든다면 이런 경력과 평가들이 가장 큰 자산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



고건에겐 부패추문이 없다
정권마다 중용된 그에겐 '고급 예스맨(yes man)'이라는 비판이 붙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에겐 부패 추문이 없다는 것. 그 뒤에는 지난해 작고한 부친 고형곤(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박사의 치밀한 '아들 관리'가 있었다. 1975년 11월 둘째아들 고건이 전남도지사로 임명되자 고 박사는 급히 가족과 친척을 서울 집으로 소집했다. 변호사였던 장남 고석윤과 고건은 물론 전북 옥구에 살던 '중량급' 친척 수명이 참석했다.
고 박사는 모임을 '비상계엄 가족회의'라 명했다. 유신정권의 계엄․긴급조치에 빗댄 것이다. 고 박사는 돈의 유혹이 많은 도백이란 자리가 아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고 전 총리의 오랜 측근 P씨는 이렇게 전했다.
"고 박사가 친인척에게 내린 계엄 1호는 '절대로 고건(建)에게 민원 청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청탁에 휘말리면 지사직를 제대로 못하고 결딴난다고 했지요. 계엄 2호는 '지사 판공비 갹출령'이었어요. 고 지사가 남의 돈을 받지 않으려면 여유있는 친척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거지요" 고 박사는 모금한 돈을 월말에 인편으로 광주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주었다. "규모는 월급 정도였다"고 P씨는 말했다.
고 지사는 3년2개월의 지사직을 무사히 마치고 79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의 정무2수석비서관으로 옮긴다. 이때 고 박사는 갹출령을 해제했다고 한다. 친척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뜻도 있었지만 아들 고건이 아버지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측근 K씨의 설명.
"고 지사는 운수업체 P사장이 가져온 돈을 세번 거절했다는 사실을 간부회의에서 공개했어요. 그래서 '고 지사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났지요. 그리고 지사직을 그만두면서 기관장 등이 모아온 전별금을 받지 않았어요"
떠나면서 고 지사는 순천에 있는 팔마비(八馬碑) 얘기를 했다. 고려 때 순천에선 부사(府使)가 임지를 떠나면 주민이 말 여덟마리를 모아주곤 했는데 최석이란 부사는 말을 돌려보내 이를 기리는 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고 지사가 팔마비를 얘기했다는 것을 전해들은 고 박사는 "건이는 확실히 돈을 안 먹을 놈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건 차기 대권 대망론' 예고하는가
현재 고건 전 총리의 상승세는 일차적으로 참여정부 첫 국무총리를 큰 흠 없이 치러낸 덕분으로 분석된다. 그는 1년여 동안 총리직, 나중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수행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행정의 달인' 이미지를 한층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자신이나 주변 인물이 도덕성 문제로 시비를 빚은 바 없으며, 말실수 따위로 세간의 비난을 받은 일도 없었다. 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 그의 '고유 업적'이 무엇인지가 다소 의문스럽긴 하다. 그러나 '행정의 달인' 이미지는 본디 튀어서 업적을 낸다고 해서 쌓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상승세는 노 대통령의 궁색한 처지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다. 노 대통령이 여러 국정 현안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발언하다 종종 공격받고 그러다 보니 지지율이 떨어진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애초 고 총리를 지명할 때 '몽돌과 받침돌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이 몽돌처럼 뾰죽하게 튈 때, 고 전 총리가 안정감 있는 받침돌 노릇을 하면서 정치적 수혜자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고 전 총리는 현재 어느 정당에도 몸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외견상 일체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으면서 내심으로는 기다림의 정치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정치권에는 많다. 즉, 2007년 대선 무렵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와 함께 어느 정치세력에선가 '고건 대망론'이 나올 가능성을 엿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그의 지지도에서는 복잡한 정치적 함축도 발견된다. 지지정당별로 볼 때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59.1%가 그에게 호감도를 표시했다. 반면에 한나라당 지지자는 그보다 많은 64.6%가 호감도를 나타냈다. 이 지표는 그가 어느 정당 지지자한테서나 두루 호감을 사는 좋은 상품임을 뜻한다. 반면에 뚜렷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실전 경쟁력이 약할 것이라는 근거로도 해석된다.
특히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좀더 선호한다는 점은 반노무현 정서가 그의 지지세에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그는 총리직 막판에 청와대쪽의 후임 각료 추천 요청을 반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대통령을 들이받는 정치적 모양새를 만든 바 있다.



정치권과 담 쌓은 고건의 '다음 행보'
최근 고건 전 총리는 철저하게도 정치와 담을 쌓은 채 칩거하는, 측근의 말대로 가만히 있을 뿐이다.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그의 일상은 평범하다. 대학로 연구실에 매일 출근, 책을 보고 지인을 만나는 정도다. 일견 대권은 물론 정치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행보다. 뒷말을 낳을까 인터뷰는 물론 여의도나 광화문에선 약속도 잘 잡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지도는 계속 오르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고건을 사랑하는 모임(고사모)' 등 자발적인 지지모임만 10개를 넘어섰다.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 등 '여당 빅3'나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야당 빅3'까지 정치권의 내노라하는 대권주자 모두 지지도에서 한 참 뒤쳐져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은 "정치 불안이 심화하면서 장관 서울시장 총리 등을 거친 경륜과 안정감을 주는 고 전 총리에 대해 국민기대가 쏠리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정치적 상황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고 전 총리에 대한 호감도는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반(反) 정치인 정서가 투영된 것"이라며 "안정된 행정가의 이미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대비돼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본부장도 "이념과 노선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 행정수도 파문, 경제난 등에 대한 실망감이 정치권 밖의 고 전 총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정치혐오증에 따른 버블적 성격이 짙어 계속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사회가 워낙 불안하다 보니 국민들이 고 전 총리를 심리적 도피처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여야는 '고건 신드롬'을 정치권에 대한 국민정서의 탄핵으로 알고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지도에서 밀리는 '차기' 대권주자들
대중과의 스킨십 차단당한 차기 주자군 '지지도 바닥세'
최근 차기 주자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인사들이 뒷줄로 밀리는 현상이 눈에 띄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당 지지도가 바닥세를 면치 못하는 상태에서 차기 주자들의 경쟁력까지 이처럼 밀리는 데 대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이 느껴진다. "차기 대선이 아직 멀었고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지만 열린우리당 대표 차기 주자들의 경쟁력이 하향 조정되는 추세가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차기 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지지율이 정체상태에 빠지면서 여타 차기 주자들에게 추월당하는 상황은 최근 들어 나타난 양상이다. 국가보안법, 수도 이전, 과거사 등의 대형 국정 이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노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며 차기 주자군의 경쟁률 역시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동영 장관의 경우 지난해 8월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고건 전 총리에 뒤지지 않았다. 한길리서치가 지난해 8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 장관은 차기 주자 호감도에서 박근혜 대표(18.3%)에 이어 2위(5.8%)를 차지했고 고건 전 총리는 4위에 그쳤었다.
물론 정 장관은 열린우리당 내 정치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차기주자 조사에서는 부동의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열린우리당 내 가장 호감 가는 정치인'을 조사한 결과 정 장관은 34.6%로, 2위인 이해찬 총리(22.0%)를 여유있게 추월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들이 오히려 경쟁력이 당내용에 머물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김근태 장관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최근 당내 경쟁력에서도 이해찬 총리에게 밀리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김 장관 진영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 듯한 분위기이다.

지지율 정체상태에 빠진 정동영, 김근태
정동영, 김근태 장관의 지지율이 퇴보하고 있는 데는 여권에 대한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두 사람의 입각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대중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을 대권 수업이라는 명분을 들어 내각에 가둔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대중과의 스킨십을 차단함으로써 대중 정치인으로서 화(禍)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의 입각에는 차기 주자를 자기 나름대로 관리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 사실이어서 이러한 비판에는 노 대통령에 대한 원망도 묻어난다.
정치판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난 두 사람이 성공적인 대권 수업을 하며 지지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정부 내에서의 역할과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는 게 여권 내의 대체적 견해다. 대중성을 일정 부분 포기한 대신 국정 수행의 전면에 나서 성공적인 행정가로서 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두 사람에게 부여한 역할 분담과 '책임 장관론'에서 감지된다. 정동영 장관의 경우 단순한 통일부 장관의 역할을 넘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아 외교, 안보 라인 전반을 관장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최근 국가적 현안으로 불거졌던 북한 양강도 폭발 의혹과 과거 핵 실험 문제를 다룬 최종 정책 책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10월 1일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는 NSC 상임위원장의 자격으로 다른 부처 행사에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근태 장관도 마찬가지. '실세 장관'으로 통하던 김 장관은 지난해 9월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 문화 정책 관계장관회의'의 첫 사회봉을 잡으면서 국정의 사회 분야 팀장 역할을 시작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 문화 부처의 논의, 조정체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경제 분야와 함께 국정 가치의 균형을 이룬다는 차원에서 매우 필요하다"며 김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얼마 전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과 관련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아직 '정치 때'를 벗지 못한 돌출행동을 심심치 않게 해 '차기'에 대한 조바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다. 착실하게 대권 수업을 받는 측면에서는 정동영 장관이 한 수 앞서 있다는 것이다

이해찬, 김혁규, 천정배씨도 변수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런 '대권 수업'을 언제까지 이어갈지는 의문이다. 당장 내년의 정치 일정이 이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올 3월 '이부영 과도 체제'를 대체할 전당대회가 예고돼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수 유지 여부를 가를 올 4월의 국회의원 재, 보선이다. 당과 정권의 명운을 가를 '미니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내에서 두 장관에 대한 '콜'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1일 장관 취임을 하면서 '돌아오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떠났던 김 장관 측은 '당이 부르면 언제라도 올 수 있다'는 입장이 강한 반면 정 장관은 고민하는 분위기가 짙다. 지난 총선 지역구를 포기한 입장에서 당 복귀의 전제조건이 '재보선 출마'이기 때문에 더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한다. 실세 통일부 장관으로 국정을 차질없이 수행하는 것과 원내 진출에 도전하는 것과의 득실을 저울질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들 두 사람 외에 열린우리당의 대권 레이스에서 갑자기 변수로 등장한 것은 이해찬 총리이다. 이 총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 중 지지도 2위를 고수하면서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총리 수행에서 기대 이상의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이 이 총리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본인은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사느냐"며 대권 무심론을 피력하지만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본격적인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접 경쟁에 뛰어들지는 않더라도 경쟁구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역할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들 3인 외에 여권의 잠재적 차기 주자로는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와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등이 꼽힌다. 김 전 지사는 노 대통령의 관심과 신뢰가 여전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여권의 유일한 영남권 주자라는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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